삼별초의 항쟁 전개과정과 역사적 의의
- 최초 등록일
- 2011.04.28
- 최종 저작일
- 2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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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별초의 항쟁 전개과정과 역사적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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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Ⅰ. 서론
우리 역사에 있어 삼별초의 대몽 항쟁은 다른 외침에 대한 항쟁과는 다르게 서로 상반된 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다. 먼저 몽고라는 거대한 외세에 맞서 끝까지 자주성을 지키기 위한 항쟁으로 보는 평가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고려왕실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반란으로 보는 상반된 평가가 그것이다. 과연 이렇게 서로 상반된 평가를 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 삼별초의 개념에 대해 알아보면 삼별초는 좌별초, 우별초, 신의군을 총칭하는 군대로서 원래는 최씨 무신정권의 사병이었다. 원래 삼별초에서의 “별초”(別抄)란 ‘임시로’ 조직된 선발군이라는 뜻의 일반명사, 일종의 유격대를 말하는 단어에서 유래했다. 여기에는 정규군이 아니었다는 뜻도 담겨 있다. 삼별초의 효시는 최이가 도둑을 막기 위해서 만든 야별초였다. 그런데 점차 인원이 늘어나면서 야별초는 좌ㆍ우별초로 다시 확대 개편되었다. 이후 몽골군에게 잡혀갔다가 돌아온 자들로 신의군이 조직되면서 이른바 삼별초란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삼별초는 최씨 집정하에서는 물론이고 이후 김준ㆍ임연 등이 집정했을 때에도 사병조직으로 큰 활약을 하였다. 삼별초는 권신들의 사병노릇을 했지만 녹봉은 국가로부터 지급받았다. 따라서 사병조직임에도 불구하고 삼별초는 국가의 정규군과 같은 성격의 군사조직체이기도 했다. 권신들의 사병노릇을 하던 삼별초는 몽골 침입 이후 근거지를 강화도로 옮기며 외적을 막는 군사조직체로 변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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