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졸라와 미술작품
- 최초 등록일
- 2011.04.27
- 최종 저작일
- 20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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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에밀졸라의 작품을 통한 사회고발
목차
Ⅰ. 에밀졸라와 사회고발
Ⅱ. 에밀졸라와 압생트
본문내용
Ⅰ. 에밀졸라와 사회고발
실험과학, 특히 생물학의 방법을 소설에 적용하려 한, 자연주의 작가로 널리 알려진 에밀졸라는 남불의 Aix-en-Provence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1858년 Paris로 올라갑니다. 대학 입학 격 고사에 실패하고, 돈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어, 많은 고생을 하게 된 그는 이때 겪은 여러 가지 가난의 험이 풍부한 문학적 자료가 됩니다.
그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프랑스를 뒤흔든 유명한 `드레퓌스 사건`때, 드레퓌스를 옹호하는 편에 서서 정의를 주장하였습니다. 프랑스에서 유태인을 비판하던때에 유태인 드레퓌시 대위가 독일스파이로 지목 되었던 것이 사건에 시작이었습니다. 그 사건에 연관되기 시작한 것은 그 사건이후 4년 뒤였습니다. 에밀졸라에게 드레퓌시 대위에 형이 나타나 동생의 결백을 밝혀달라고 하였고 드레퓌시에 형에 이야기를 듣고 참모 본부 파카르 중령의 조사에 의하면 포병대 비밀을 팔아먹은 사람은 드레퓌시가 아닌 육군 소령 에스테라지라는 것을 알게 된 에밀졸라는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고통 받고 있는 드레퓌시 대위를 위해 군대를 고발하였습니다. 하지만 군대를 고발하자마자 에밀졸라는 사람들의 비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참모 본부는 자신들에게 기세가 기울어지자 에밀졸라를 `프랑스 육군의 명성을 떨어뜨렸다`는 대목으로 고발하였습니다. 에밀졸라는 재판에 서게 되었고 재판장은 에밀졸라에게 국민 사과를 요청하였으나 그는 말했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드레퓌스는 무죄입니다. 지금 정부, 언론등 모두 나의 반대편에 있습니다. 나의 편은 오직 진실과 정의뿐! 프랑스는 언젠가는 거짓에 맞서서 싸운 나에게 감사할 때가 올 것입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에밀졸라는 징역 1년, 벌금 3천 프랑의 벌금형에 처해졌습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