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수취제도의 변화
- 최초 등록일
- 2011.04.19
- 최종 저작일
- 20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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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 후기의 수취제도에 대해 정리했습니다.
목차
Ⅰ. 들어가며
Ⅱ. 대동법
1. 소작제에 따른 농민부담
2. 방납의 폐단
3. 대동법과 상정법
4. 대동법 실시의 의의
Ⅲ. 영정법
1. 전후복구를 위한 정부의 시책
2. 토지 겸병의 확대
3. 피지배층의 대응
4. 영정법
Ⅳ. 마치며
본문내용
Ⅰ. 들어가며
조선시대의 수취제도에는 토지에 부과하는 조세, 집집마다 부과하는 공납, 호적에 등재된 정남에게 부과하는 군역과 요역 등이 있었으며, 이것이 국가재정의 토대를 이루었다. 그 중에서 공물과 관련한 대동법과 토지에 관련된 영정법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Ⅱ. 대동법
대동법은 선초 과전법체제하의 공전제가 무너지고 공전의 내부에서 형성된 지주소작관계의 발전에 따른 토지 소유관계의 변화과정에서 다수의 농민이 영세 소작농으로 전락하고 한편으로는 선초의 자급자족적 자연경제가 무너지고 교환경제와 소상품생산이 전개되는 조선후기의 봉건경제의 해체기에 시행된 수취체제이다. 대동법은 수취제도에 지대한 변화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교환 경제의 발전을 자극, 1차 산업의 생산부문에 시장을 위한 생산, 상품 생산의 발전을 자극한데 그 경제사적 의미가 있다.
조선왕조의 수취제도는 크게 물납공조(物納貢租)와 노동납(勞動納)으로 나눌 수 있는데 물납공조에는 토지를 대상으로 미곡을 수세하는 전세(田稅)와 가호를 대상으로 농수산물, 축산물, 수공업 제품을 비롯하여 수백 가지 종류의 재화로 수세하는 공납(貢納)이 존재 했다. 각 고을의 토산물을 거두는 이러한 공납제는 생산력의 발전과 봉건적 토지소유관계의 변화와 농민의 계층분화 및 공납제 자체의 모순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점차 수취체제로서의 기능을 상실해 가고 사회경제의 질고로 변해갔다.
참고 자료
『대동법연구』 김옥근
『17세기 조선의 공납제 개정논의와 대동법의 성립』 이정철
『한국사』 30, 33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특강』 서울대출판부
『탐구한국사』 범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