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와 고구려의 생활상
- 최초 등록일
- 2011.03.12
- 최종 저작일
- 20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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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초기 부여와 고구려의 생활상에 대해서 요약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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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 부여
부여는 이미 기원전 4세기 경에 만주평야(장춘·농안)에 건국된 반농·반목의 선진국가로 일찍부터 남쪽 고구려나 북쪽 유목민족인 선비족과 적대적인 관계에 놓여 있었기에 중국과의 연결을 통하여 국가의 유지와 왕권의 신장을 도모하였다.
왕 아래 4가(馬·牛·猪·狗)가 있어 제가회의에서 중요한 국사를 처리하였으며, 그 아래 각기 4출도가 있어 중앙과 합쳐 5부를 형성하였다. 제가회의 합의하에 왕을 추대하였으며 흉년에는 왕에게 책임을 묻기도 한 것으로 보아 왕권이 미약하였다.
경제생활은 송화강 유역의 넓은 평야를 차지하여 농경과 목축업을 주로 하였고, 사람들은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하여 활 잘쏘는 사람을 주몽이라고 불렀으며, 특산물로는 말, 주옥, 모피 등이 있어서 중국에 수출까지 하였다.
왕과 귀족인 여러 가(加)가 있었고 그 밑에 호민으로 불리는 지배계층이 있었다.
그 아래에는 민(民)과 하호(下戶)로 불리는 천시된 층이 있었는데 읍락에 거주하면서 일반농업에 종사하는 농민으로 조세와 부역을 담당하였다.
최하계층으로 노비가 있었는데, 죄인, 포로, 채무불이행자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매매가 가능하였고 순장의 대상이 되기도 했으며 이러한 노비의 소유는 호민층 이상이어야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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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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