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토지제도 연구에 수반되는 논쟁점들
- 최초 등록일
- 2011.02.18
- 최종 저작일
- 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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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 토지제도 연구에 수반되는 논쟁점들에 대한 글입니다.
목차
Ⅰ. 왜 토지제도를 연구해야 하는가.
Ⅱ. 전시과체제
1. 전시과제도
1) 시정전시과
2) 개정전시과
3) 경정전시과
2. 토지의 유형
Ⅲ. 토지제도 연구의 논쟁점들
1. 토지국유제설
1) 和田一郞의 토지국유제이론과 그 비판
2) 유물사학자들의 토지국유제이론과 그 비판
2. 양반과전의 성격
3. 지목별 경영
1) 공음전
2) 군인전
Ⅳ. 앞으로의 과제
본문내용
Ⅰ. 왜 토지제도를 연구해야 하는가.
상공업이 발달하기 이전인 고려 사회에서 생산 활동의 주를 이루고 있는 것은 농업이었다. 따라서 농업의 근간이 되는 토지야말로 고려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생산수단이라 할 수 있다. 기본적인 경제활동을 비롯해 왕실과 조정의 재정적 기초에서부터 백성에 대한 지배에 이르기까지 토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없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토지의 소유관계와 지배관계는 고려 사회의 신분관계가 집약적으로 나타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당시의 토지제도를 연구하는 것은 고려 사회의 기초를 이해하는데 선행되어야 할 첫 번째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먼저 고려의 전시과제도의 내용과 변화에 대해 개괄적으로 살펴본 후, 전시과제도 연구에서 파생되는 여러 논쟁점들을 검토하고 앞으로 남겨진 과제들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Ⅱ. 전시과체제
1. 전시과제도(田柴科制度)
고려 전기 토지제도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전시과였다. 이 전시과는 문무백관으로부터 부병 한인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관직에 복무하거나 직역을 부담하는 자들에 대하여 그들의 지위에 따라 응분의 전토와 시지를 분급한 것을 의미한다. 이는 크게 세 차례에 걸쳐 변개되어 경종 원년에 ‘시정’된 이래 목종 원년에 ‘개정’을 보았고, 그 뒤 문종 30년에 ‘경정’되었다.
<중 략>
역사라는 학문은 과거에 있었던 것을 한번만 밝히면 되니 새로운 것을 계속 만들어 내야 할 공학 등과 비교해 봤을 때 얼마나 쉬운 학문이냐고. 그러나 그 사람이 이렇게 무수한 연구 결과물들을 접하고서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을까? 역사라는 학문만큼 보는 사람에 따라서, 활용하는 자료에 따라서, 해석에 따라서 다양한 결과가 나올 수 있고 또 그만큼 끝을 알 수 없는 학문이 존재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앞으로 남은 과제는 하나다. 분명한 답을 알 수 없는 이 수많은 논쟁점들에 더더욱 의문을 제기하면서 우리의 역사상에 대해 더욱더 체계적인 정리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 어떤 학자의 어떤 견해를 안다는 것이 어쩌면 쓸데없는 일처럼 보일수도 있지만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역사’라는 수확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참고 자료
강진철, 『고려토지제도사연구』, (일호각, 1991)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14, (국사편찬위원회, 1993)
박용운, 『고려시대사』, (일지사, 2008)
『역사비평』편집위원회, 『한국 전근대사의 주요 쟁점』, (역사비평사, 2002)
한국사연구회, 『(새로운)한국사 길잡이』上, (지식산업사, 2008)
한국사연구회, 『한국사연구입문』②, (풀빛,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