百濟의 建築技術이 新羅의 建築技術에 끼친 영향
- 최초 등록일
- 2011.01.25
- 최종 저작일
- 20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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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현재로서는 그 유구를 확인할 수 없지만 당시 목탑지의 기단과 건축적 유물과의 비교를 통하여 미륵사지목탑을 조영한 백제의 건축기술이 新羅의 건축기술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목차
1. 머리말
2. 백제의 건축기술
3. 미륵사지목탑의 유구와 조형을 통해 본 백제인의 건축기술
4. 신라의 건축기술
5. 백제의 영향을 받은 신라의 황룡사구층목탑
6. 맺음말.
본문내용
1.머리말
삼국시대 건축문화의 우수성은 백제와 신라문화의 발전된 양상을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유물들과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예컨데 백제인들이 신라 또는 일본에 건너가서 남겨놓은 귀중한 문화업적과 근래 지하에 매몰된 자취에 대한 고고학적인 발굴이나 미술사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백제문화의 우수성이 확인 되고 있는 것이다. 그 대표적 예로서 미륵사지목탑의 복원은 당시 백제의 건축조형기술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단초가 된다. 또한 여러 寺地의 기단부 라던가 금동탑편에서 나타난 하앙식 공포, 그리고 백제산수문전에 나타난 꺽음팔작지붕의 형태 등으로 유추해 볼 때 당시의 건축형태에 대한 영향관계를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통일신라기에 불국사와 석굴암과 같은 귀족적이고 찬란한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서 신라시대의 대표적 건축유구인 황룡사지구층목탑의 조형을 들 수 있는데 여기에서 백제의 기술자인 아비지가 초빙되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는 기록과 두 사찰 모두 호국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세운 경쟁관계의 탑이라는 점을 통해 백제의 건축기술이 신라에도 전파되었으며 교류를 통한 건축기술의 변천과정이 있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현재까지의 유구인 미륵사목탑지와 황룡사목탑지의 현재 유구인 기단부를 비롯하여 그 밖의 건축유구를 통해 당시의 건축기술력이 어떠한 방식으로 서로 간에 영향을 받았는지 알아보겠다.
2. 백제의 건축기술
백제는 4세기 중엽인 372년(근초고왕 27년)때부터 동진을 통하여 중국과 공식적인 교류를 가지며, 건국 초기부터 중국 문화를 흡수하여 일찍부터 문화적 기반을 조성하고 있었다. 권종남, 「황룡사구층탑」, 미술문화, 2006, p.27.
동진으로부터 건너온 호승 마라난타에 의해 불교가 전래되었으며, 백제 문화에 획기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고 이때부터 수많은 사찰이 조영되기 시작하였다. 불사의 건립과 더불어 堂塔으로서 불탑 역시 활발히 조영되었으며 삼국 중에 선구적인 위치에 있었던 백제의 건축기술은 신라의 황룡사구층목탑 건립의 본보기가 되었다. 또한 일본 초기사원의 창립을 위하여 寺工과 기와박사 등이 건너간 역사적 기록 등 백제를 통한 사탑 건립의 융성과, 그로 말미암은 다양한 목조건축과 석조미술의 발생 배경을 짐작케 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