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프랑스혁명에 대한 수정주의 학파들의 해석 입니다목차
목 차Ⅰ. 서 론.
Ⅱ. 본 론.
1. ‘수정주의’ 이론.
1) Edmund Burke.
2) Alfred Cobban.
3) George V. Taylor.
4) Francois Furet.
2. ‘수정주의’ 이론의 문제점.
Ⅲ. 결 론.
본문내용
주장하였다. 프랑스 국민과 대표자들에게 혁명은 끝이 났으며, 1789년 10월 부터 1790년 7월에 걸친 시기는 ‘행복한 해’였다. 그런데 1791년 7월의 ‘샹 드 마르스 학 살’ 이후 혁명은 민중들의 개입으로 빗나가기 시작하였다. 결정적으로는 1792년 8월 10일 파리 민중이 왕궁을 습격한 사건으로 혁명은 본 궤도를 완전히 일탈하게 되었다는 것이 다. 그리하여 혁명은 1793년부터 1794년 봄까지 ‘고난의 시기’가 도래하였고, 그 시기는 현대 프랑스의 형성에 공헌한 바가 없다고 하였다.퓌레에 의하여 수정주의 이론은 새롭게 부각되고, 프랑스 혁명에 대한 인식은 크게 바 뀌어졌다. 퓌레의 주장대로 “프랑스 혁명은 끝났다.” 우리가 생각했던 값지고, 고귀한 프랑스 혁명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게 되었다.
2. ‘수정주의’ 이론의 문제점.
‘수정주의’가 대두되면서 ‘프랑스 혁명’에 관한 우리의 꿈은 무너졌다. 다시 ‘정통주 의’가 사학계에서 관심을 끌게 되더라도, 손상된 혁명의 이미지를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 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수정주의적 해석’이 완벽한 논리를 갖춘 이론은 아니다. ‘수정 주의’는 ‘정통주의’의 이론을 맹목적으로 비판하는 과정에서, 혁명의 업적을 지나치게 경 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정주의자들에게 간과되고 있는 혁명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근대 정치체제의 골 격인 공화주의 정치의 수립이다. 1792년에 성립된 국민공회는 공화제를 선언하였고, 이 체 제는 혁명을 거치는 동안 발전하여 지금의 프랑스에 이르고 있다.
미국의 정치 사상가였던 토마스 페인(Thomas Paine) 역시 군주정을 타도하고, 공화정 을 수립한 혁명의 성과를 적극적으로 옹호하였다. 그는 군주정이 개개인의 재능과 능력을 무시하고 있다고 보고, 인간이 지닌 이성적 능력에 의거하여, 합법적 정치체제를 구현한 프랑스 혁명을 옹호한 것이다.
수정주의자들은 계몽사상가들이 혁명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도 축소 또는 은폐하여 평가 를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루소의 이념과 민중 운동은 상호 작용을 일으켜 혁명을 주도한 하나의 중요한 힘이 되었다. 계몽사상의 영향으로 개화된 구제도 시절의 특권층은, 혁명 이후에도 계몽사상의 이념을 구현하려고 노력하였고, 이것은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또한 계몽주의 사상의 영향으로, 1789년에는 국민의회에 의해 ‘인권선언’이 공포되었다. 이 문서는 이들에게 불만스러웠던 현실을 타파하고, 새로운 사회가 지향해야 할 이상과 원칙을 천명한 것이었다. 이 문서에 나타난 이성은 근대 시민사회, 입헌 국가체제의 수 립 원리로써 작용하였고, 이는 우리 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입법 과정에 많은 영 향을 미쳤다.
그리고 프랑스 혁명은 민중들의 행동에 의해 역사가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을 사람들에게 심어 주었다. 토인비에 의하면, 위대한 혁신은 언제나 밑에서부터 일어난다고 하였다. 역사의 원동력은 민중이며, 프랑스 혁명은 민중의 개념을 인식시켜 주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수정주의 학자들은 테러와 학살이라는 개념에만 초점을 맞추어 혁명의 잔인함만을 주장 하였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를 살펴볼 때, 커다란 역사적 변혁에는 피할 수 없는 재앙이 항상 뒤따르기 마련이다. 비록 이러한 과정이 아주 폭력적이고 인권을 유린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하더라도, 이 사실만을 근거로 프랑스 혁명의 수많은 업적들을 매도해서는 안 될 것이다.
Ⅲ. 결론.
역사적 사건의 이해는 연구자와 시대에 따라 다양해 질 수밖에 없다.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었던 값지고, 고귀한 ‘프랑스 혁명’이 보잘 것 없는 혁명으로 바뀌었듯이, 역사는 본질적으로 변화를 추구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변화는 현재도 계속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급변하는 사회, 그리고 그에 따른 다양한 해석들의 등장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 추세이다. 이러한 사회의 흐름에 발 맞추기 위해서는 독단적으로 자기 자신의 목소리만을 높이는 편협한 자세는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수정주의’가 현 시점에서 ‘프랑스 혁명’을 해석하는 데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하여, 이것만이 올바른 해석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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