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개전의 책임은 어디에 있나
- 최초 등록일
- 2010.12.01
- 최종 저작일
- 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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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다섯권의 참고자료를 바탕으로 해서 쓴 시험 답안지 입니다. 시험 결과는 A+이었구요. 말 그대로 한국 전쟁 개전의 책임에 대해서 쓰고 자신의 의견을 바탕으로 한국전쟁의 성격을 규정지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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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이 남한으로 내려오면서 본격적으로 발발했다. 그 전에 이미 38선 근처에서는 잦은 총격 사건과 소규모 전투가 진행되고 있었으나 북한이 대규모 전력을 가지고 남침을 한 일은 없었다. 그러나 1950년 6월 25일 북한 인민군의 전면적 전쟁이 시작되었다. 전쟁이 시작되자 “북진 통일론”을 외치던 이승만 정부는 부리나케 도망가기에 바빴다. 전쟁에 대한 이렇다 할 대응이 없이 미국의 원조만을 기다리던 우리 정부는 북한의 갑작스러운 침입에 우왕좌왕 하며 한강다리를 폭발하는 등 무책임한 행위만을 하다가 결국 미국과 함께 온 UN군이 지원을 받고 나서야 서울을 수복하고 북한으로 진격 할 수 있었다.
전쟁 당시의 남한의 사정을 보면 일단 전쟁을 일으킨 쪽이 남한이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다. 이승만은 “공산도배에게 빼앗긴 고토를 되찾고 북한 동포를 해방하자” 고 떠들어 댔지만 당시 전쟁에 대한 준비 상태는 미비했다. 미국의 원조를 받는 입장에서 이렇다 할 무기나 탱크, 화력을 갖춘 발포 무기도 제대로 원조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남한의 입장에서 남한이 먼저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북한을 도발했다는 캘커타 대학 굽타 교수의 주장은 신뢰성이 떨어진다.
굽타 교수는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 방송에 퍼졌던 남한의 ‘해주침략설’을 가지고 남한 군대가 북한의 해주를 침입해 북한에 도발 하자 북한이 군대를 이끌고 남한으로 내려왔다고 주장하지만 이미 앞에서도 말했다 시피 38선 근처에서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대대급의 전투마저도 몇 차례씩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해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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