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교
- 최초 등록일
- 2010.11.19
- 최종 저작일
- 20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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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시대에 도교가 어떻게 행해졌는지에 대해 기술하였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26>, 참고-요약
목차
1) 소격서 중심의 과의적 도교
① 태조
②태종
③세종
④세조
⑤성종 ~ 연산군
⑥중종
2) 수련적 도교의 발전
3)결론 - 조선시대의 도교
참고문헌
본문내용
도가란 만물의 근원인 도와의 합일을 추구하는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중심으로 한 학파이며, 도교란 중국의 잡다한 민간신앙을 신선설을 중심으로 체계화한 종교로서 불로장생의 신선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이다. 도교는 도가사상을 끌어들여 교리정비에 이용하고 노자를 신격화해 숭배하며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을 주요 경전의 하나로 삼고 있다.
이렇듯 도가와 도교는 상호 밀접한 관계를 가지지만 양자를 동일시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도교는 종교인데 비해 도가는 철학이며, 도교의 종교사상이 곧 도가사상이라고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선초기의 도교는 고려시대와 마찬가지로 교단조직을 갖추지 못하였다. 그러나 도교기관도 다양하고 도교의례인 재초(齋醮)의 거행도 빈번했던 고려시대에 비해, 조선 초기에는 도교기관이 소격서(昭格署)로 단일화되고 재초도 빈도와 규모 등에 있어 크게 축소되었다. 그 대신 불우한 지식인들 사이에서 엄격한 자기 수련을 통해 인간의 내적 생명력(元氣)을 길러 신선이 되는 것을 이상으로 하는 수련적 도교(內丹學)가 발전하게 되었다. 따라서 한국도교사에서 조선 초기는 도교의 중심이 과의(科儀)에서 내단(內丹)으로 바뀌어가는 시기라 할 수 있다.
1) 소격서 중심의 과의적 도교
조선왕조는 성리학을 기초로 한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했던 만큼, 유교에 입각하여 문물제도의 정비를 추진하였으며, 이를 위해 과거의 문화전통 가운데 유교와 배치되는 요소들을 청산하고자 했다.
① 태조
태조원년(1392) 8월에 예조전서 조박(禮曹典書 趙璞) 등은 국가의 사전(祀典)을 유교이념에 맞게 고칠 것을 건의하면서, 고려 때 설치되었던 여러 도전(道殿)과 신사(神祠)의 재초를 모두 폐지하자고 했다. 그리고 복원궁(福源宮) ․ 신격전(神格殿) ․ 구요당(九曜堂) ․ 소전색(燒錢色) ․ 청계배성소(淸溪拜星所) 등의 도교기관을 모두 없애고 소격전(昭格殿) 한곳만 존속시키자고 건의했다.
참고 자료
노태돈 외,『한국사특강』,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0.
국사편찬위원회,『한국사 26』, 국사편찬위원회,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