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당 최남선에 대해
- 최초 등록일
- 2010.10.30
- 최종 저작일
- 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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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육당 최남선에 대해
목차
※ 최남선(1890-1957)
1. 유학생활과 문학활동
2. 시에 대한 인식
3. 자유시로의 한계
4. 시조에 대한 관심
5. 그의 시에서의 ‘바다’와 ‘산’의 의미
6. 최남선의 위치와 한계
본문내용
※ 최남선(1890-1957)
1. 유학생활과 문학활동
최남선은 구한말 서울의 중인 가정에서 출생하였으며, 어려서부터 [황성신문]과 [제국신문]에 투고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1904년 관비 유학생으로 일본 유학을 떠나게 되는데 일본인과의 불화로 인하여 귀국하고, 1906년 두 번째 유학길에 오르지만 3개월 만에 중퇴하고 귀국한다. 그의 유학은 통틀어 6개월을 넘지 못하지만 그가 일본의 신문물을 접촉하고 받은 영향은 간과할 수 없는 것이었다. 1908년 최남선은 [소년]지를 창간하고 자신의 역사, 지리 지식을 바탕으로 계몽 교양 활동을 펼친다.
2. 시에 대한 인식
시에 대한 최남선의 인식은 대체로 상식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체시라는 장르는 그를 제외하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최남선 자신은 신체시에 관한 명확한 인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신시라는 명칭 또한 새로운 시라는 의미 이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소년]지에 나타나는 신시의 창작은 ‘해에게서 소년에게’와 ‘신대한 소년’, ‘구작삼편’, `꽃 두고` 등의 몇 편에 불과하고 [청춘]지에는 창가와 시조가 두드러진다. ‘해에게서 소년에게’는 과거의 규칙적인 음수율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운율이 나타나며 시어에서도 구어체를 구사하여 시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