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한국음악작곡
- 최초 등록일
- 2010.10.10
- 최종 저작일
- 20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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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930년대한국음악작곡
목차
[1930년대]
<월북작가들의 금지>
<안기영>
이흥렬(李興烈 1909∼1980)
● 어제는 친일, 오늘은 친미 반공
● 피아노로 수놓은 일본 흠모증
● 친일음악보국의 단위부대 지휘자
● 오선보에 새겨진 반공사상
본문내용
[1930년대]
서양음악의 수용 및 발전단계를 요람기·정착기·성장기 등으로 명명한다면 1930년대는 성장기에 해당하는 기간이다. 이 시기에는 외국에서 정규 음악교육을 받고 돌아온 음악가들이 각각 활발한 음악회와 작품집을 출간하는 한편, 그 동안 노래 중심으로 펼쳐지던 양악활동이 관현악 등으로 영역을 넓혀감에 따라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1927년에 방송을 시작한 중앙경성방송(JODK)이 1933년부터 점차 서양음악방송을 늘려나가기 시작함에 따라 그에 따른 여파는 서양음악 발전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1931년 창작가곡집을 출간한 현제명과 홍난파 두 작곡가는 이후 1930년대의 예술가곡의 작곡에 주도적 역할을 하였으며, 그들은 1933년의 작품발표회에서 〈나그네의 마음〉이라는 연가곡(連歌曲)풍의 작품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한편, 1932년 독일유학에서 돌아온 채동선(蔡東鮮)은 작곡발표회를 통하여 독일 낭만주의 작품의 견실한 발판을 바탕으로 현제명·홍난파의 작품경향과는 또 다른 새로운 면모를 선보이며 우리 나라의 음악계에 등장하였다.
그 뒤를 이어 1930년대 중반에는 안기영(安基永)·김동진·김세형·이흥렬(李興烈) 등이 가곡을 중심으로 한 활발한 창작활동을 했다. 그리고 박태준·김성태 등의 동요집이 출간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한편, 1939년 6월 8일과 9일에는 서울의 부민관에서 동아일보사가 주최한 전조선창작작곡발표회 (全朝鮮創作作曲發表會)가 열렸는데, 이 음악회는 위에서 살펴본 1930년대 창작음악계를 총결산하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1936년에 김동진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초연되고, 1940년에는 김성태가 전래동화에 바탕을 둔 무용극 음악 〈흥부와 놀부〉를 발표함으로써 창작음악의 영역이 점차 확장되는 전망을 보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