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고려사회가 귀족제 사회인가 관료제 사회인가에 대한 논의와 쟁점을 한 레포트입니다. 점수 잘 받았습니다^_^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① 관료선발제도 - 과거제와 음서제
② 귀족제설 비판과 관료제설의 논거
③ 관료제설 비판
④ 귀족제사회의 개념과 귀족제설의 논거
⑤ 귀족관인사회설
⑥ 새로운 시각 : 혈족연구
Ⅲ. 결론
참고자료
본문내용
Ⅰ. 서론
‘한국 중세 사회와 문화’의 강의계획안의 수업자료들을 살펴보면서 가장 눈에 띈 자료는 유승원 교수의 『고려 시대를 귀족사회를 보아야할 것인가』라는 논문이었다. 처음에는 ‘고려 시대가 귀족사회이건 관료사회이건 그게 그렇게 중요한 사안인 것일까?’ 라는 호기심에 논문을 접했는데, 정말 많은 걸 깨달았다.
고려사회를 귀족사회로 보느냐, 관료사회로 보느냐의 문제는 단순한 지배층 성격의 논의를 넘어서 식민사학 극복과도 연결이 될 뿐 아니라 신라와 조선을 어떻게 봐야할 지에 대한 잣대까지 제공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논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볼 필요를 느꼈고, 여러 가지 책과 논문들을 조사하며 발표와 레포트를 준비하게 되었다.
1960년대까지 한국 역사에서 고려사회는 ‘귀족제사회’ 였다. 『고려 명종대 정권의 성격』이라는 논문 발표로 귀족제사회설은 거의 정설로 정착했다. 그런데 70년대 초기에 들어와 이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었다. 고려 사회는 귀족제사회가 아닌 관료제사회라는 것이다. 70년 초 박창희 교수가 『고려시대 관료제에 대한 고찰』을 발표함으로써 역사학계에서는 파란이 일게 되었다.
고려 시대가 귀족사회인지 관료사회인지에 대한 논란이 짙어지면서 고려의 지배세력의 성격에 대한 연구 역시도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그러다보니 고려 시대의 관료선발제도인 과거제와 음서제에 대한 논의가 관료제와 귀족제를 가늠하는 개념설정의 기준이 되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과거제와 음서제에 대해 먼저 살펴본 후, 관료제설과 귀족제설을 살펴보고자 한다.
Ⅱ. 본론
① 관료선발제도
1) 과거제
과거제는 광종 9년(958) 후주의 귀화인인 쌍기의 건의에 의해서 처음 실시되었다. 과거는 제술과라고도 불리는 진사과 그리고, 명경과 및 잡업 등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우리가 여기서 가장 집중해야할 부분은 과거의 응시자격에 관련한 부분이다. 응시자격의 범위에 따라 과거제는 귀족제설을 뒷받침하기도 하고, 때로는 관료제설을 뒷받침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문종 2년(1048)의 규정에 의하면 각 주․현의 부호장 이상의 손과 부호정 이상의 아들만 제술․명경업에 시험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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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희,〈高麗時代「官僚制」에 대한 고찰〉《高麗社會의 貴族制說과 官僚制論》, 지식산업사,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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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원,〈고려사회를 귀족사회로 보아야 할 것인가〉,《역사비평》제 36호, 역사비평사,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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