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역사편찬과 역사인식
- 최초 등록일
- 2010.08.16
- 최종 저작일
- 20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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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시대의 역사편찬과 역사인식을 다룬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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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조선시대에는 고려말기 이래의 성리학적 역사서술의 전통을 한층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키면서 그 안에서 근대 역사학의 싹을 키워가고 있었다.
조선시대의 편사정신은 성리학을 근본으로 하여 그 응용학으로서 과거의 역사를 정리하고, 이를 거울로 하여 정치적 교훈을 얻고자 하는 데 일차적 목적을 두었다. 성리학은 윤리ㆍ도덕 질서의 확립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면서도 합리적인 우주관과 민본적 정치관 등을 담고 있어서 이에 기초를 둔 역사서술과 역사인식은 상대적인 진보성과 과학성을 띠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에 조선시대 역사학의 발전을 촉진한 또 하나의 요인은 왜란과 호란으로 이어지는 국난을 경험하면서 민족적인 자아의식이 크게 성장한 것이다. 조선후기에 사서편찬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18세기 후반 이후로 역사학은 점차 경학인 성리학에서 독립하여 독자적인 학문영역으로 전문화되어가는 추세를 보임과 동시에 역사서술의 고증적 방법이 심화하고 역사주체를 넓혀가는 경향이 나타났다. 조선후기 사학의 이러한 새로운 모습은 근대 역사학을 향하여 한걸음씩 다가가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이 개항 이후 새롭게 수용된 근대 서양의 역사학과 접목되어 우리나라 근대 역사학을 수립하는 모체가 된 것이다. 어제 이와 같은 큰 흐름을 염두에 두면서 조선시대 역사학의 전개과정을 각 시기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태조에서 성종에 이르는 15세기에는 고려시대와 성격을 달리하는 새로운 통치질서를 세워가는 과정과 맞물리면서 국가의 통치철학을 담은 다양한 사서들이 관찬, 즉 국가사업으로 편찬되었다.
가장 먼저 착수된 것은 고려시대 역사의 정리였다. 바로 앞선 시대에 대한 정리가 없이는 새로운 질서의 방향 설정이 곤란하고, 새 질서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려웠던 까닭이다. 고려시대에 대한 정리는 고려시대의 실록과 이제헌의 사론 등을 참고하여 이미 태조 때부터 정도전 등에 의하여 착수되었지만, 실제로 이 사업이 완결된 것은 문종 때 가서였다. 기전체 형식의 『고려사』와 편년체 형식의 『고려사절요』가 약간의 시차를 두고 간행된 것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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