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직후 신국가 수립운동(한국근현대사)
- 최초 등록일
- 2010.07.11
- 최종 저작일
- 2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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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해방직후 신국가 수립운동(한국근현대사)
목차
Ⅰ. 서론 ………………………………………………………………………………… 2
1. 해방직후 신국가 건설의 과제 ………………………………………………… 2
Ⅱ. 남한에서의 상황 ……………………………………………………………………3
1. 건국준비위원회와 인민위원회 ………………………………………………… 3
2. 좌익계열 ………………………………………………………………………… 6
3. 우익계열 ………………………………………………………………………… 8
Ⅲ. 북한에서의 상황 ………………………………………………………………… 10
1. 이북에서 건국의 중심이 된 건국준비위원회와 인민위원회 …………… 10
2. 해방 직후 북한 정치 지형의 변화 - 좌익 세력의 귀환 ………………… 13
Ⅳ. 결론 ……………………………………………………………………………… 15
본문내용
1. 해방직후 신국가 건설의 과제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패전하여 항복함으로써 조선은 해방을 맞이하였다. 해방 뒤 조선은 무엇보다 자주적 독립 국가를 세우는 일이 시급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족해방운동 세력을 중심으로 전 민족이 단결하여 당면한 민족 과제를 해결해야 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민족은 일제에게서 주권을 되찾으려고 끊임없이 투쟁을 벌였지만 끝내 우리 손으로 일제를 몰아내지 못했다. 우리가 맞이한 해방은 겉보기에 명백히 연합국의 승리로 주어진 해방으로, 이후 한국의 국가 형성과정을 조건 짓는 중요한 외적요인으로 작용하였다. 한국의 해방은 2차 대전의 부산물, 미소의 이해관계의 절충과 대립의 소산이었다. 때문에 해방과 함께 38도선을 경계로 남북한을 각 점령한 미소가 해방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된 상황은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 민족이 자주적인 독립 국가를 세우는 일은 더 어렵게 되었다.
이처럼 어려운 조건에서 민족해방운동세력은 해방 직후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활동하며 각기 신국가 건설을 구상하였는데, 그 방향을 둘러싸고 서로 입장을 달리하는 몇 갈래의 흐름이 있었다. 궁극적으로는 사회주의적 경제 질서의 수립을 지향하되 좌우합작을 통한 자주적인 국가건설과 점진적인 사회변화를 추구했던 여운형의 조선건국동맹(朝鮮建國同盟, 이하 건국동맹), 조선인민당(朝鮮人民黨, 이하 인민당)으로 대변되는 세력, 노동자·농민에 근거하여 사회의 혁명적 변화를 추진했던 박헌영의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 이하 조공)으로 대변되는 세력, 조공과 같은 계열의 좌익세력으로서 백남운 중심의 남조선신민당(南朝鮮新民黨) 세력, 외세 의존적 국가건설을 꾀했던 김성수·송진우의 한국민주당(韓國民主黨, 이하 한민당)으로 대변되는 세력, 자본주의적 경제 질서의 수립을 지향하면서도 좌우합작에 의한 자주적인 국가건설의 필요성을 인정했던 안재홍의 조선국민당(朝鮮國民黨)으로 대변되는 세력,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내세운 김구와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 이하 한독당)도 해방정국의 주요한 정치세력이었다.
1970년대 중반이후 건준을 재조명하는 연구가 약간 있어 왔지만 체계적 연구는 드문 편이다. 이제까지의 건준에 대한 연구의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 역사적 사실에 기초를 두는 사실위주의 연구이거나, 둘째, 건준의 성격을 주로 이데올로기적 측면에서 연구한 것이었다. 후자는 다시 둘로 나뉘는데 하나는 건준이 해방이후 공산주의 계열의 세력 확장을 위한 도구로 이용당했다고 보는 견해이고, 다른 하나는 특정 이데올로기적 편향성을 갖기 보다는 독립민족국가의 건설을 이룩할 수 있었던 통일전선의 성격이 강했다고 보는 견해로 나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