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개혁 시기 조선의 군사제도 개혁
- 최초 등록일
- 2010.06.18
- 최종 저작일
- 2009.12
- 11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갑오개혁 시기 조선의 군사제도 개혁
목차
Ⅰ. 머 릿 말
Ⅱ. 본 론
갑오개혁 시기 조선의 군사제도 개혁
1) 제1차 갑오개혁
2) 제2차 갑오개혁
3) 제3차 갑오개혁
Ⅲ. 맺 음 말
*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머 릿 말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국제질서는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사대교린체제였다. 조선은 이런 중화 중심적 세계관에 오랜 세월 묻혀있었을 뿐만 아니라 철저한 주자학적 학풍을 조선체제의 뼈대로 삼아 중국보다 더 중화사상에 심취해고, 국제사회는 19세기 자본주의적 체제를 바탕으로 하는 경제적 침탈이 동아시아에까지 뻗어 중화질서의 핵이라고 할 수 있는 청이 무너지면서, 변방 국가이던 일본이 직접 중국의 조공질서를 깨트리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1880년 김홍집이 조선책략을 들여오고 나서 이에 대해 위정척사의 반발이 영남만인소운등으로 이어지고 본격적으로 만국공법적 체제에 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고종과 일부 개화파를 제외한 대다수가 만국공법적 체제에 관해 반대하고 있었고, 임오군란을 통해 새로운 국제질서 체제로의 이행에 대한 불만이 표출 되었다.
갑신정변은 청의 반대하던 개화파에 의해 이루어진 반청, 자주의식의 표명사건이었으나 3일 천하로 끝나버리고 이로 인해 청의 적극적 간섭정책의 빌미를 마련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고종 및 반청세력은 러시아와의 밀약을 통해, 서방열국으로부터 차관 등을 시도하며 청의 간섭정책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였다.
고종은 교정청을 통해 자주적인 개혁을 시도하였지만 일본의 간섭으로 일본의 강압적인 개혁기구인 군국기무처를 설치하게 되었다. 조선에 대한 일본의 간섭이 못마땅 했던 청과 일본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키고 청일전쟁의 결과로 일본이 승리하게 되어 일본은 청과 시모노세키 조약 맺게 된다. 조약으로 인해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청이 파기되었고, 17세기 이후 지속되어 온 전통적 국제질서인식에 큰 변화가 생겼고, 동북아에 있어서의 기존체제와 국제관계 및 질서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했다.
일본은 갑오개혁을 통해 조선의 정치, 사회, 경제, 군사 등 많은 부분에 있어서 개혁을 시행했다. 하지만 군사 부분은 표면적인 개혁 일 뿐 군사수와 무기수를 제한해‘수박 겉할기’식의 개혁으로 조선 군대를 약화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했다. 일본은 조선의 군사력 약화를 통해 조선 침략을 하나씩 준비해 왔던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