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계 박세당의 유학사상 연구
- 최초 등록일
- 2010.06.16
- 최종 저작일
- 20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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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사학과 학부 졸업논문
목차
Ⅰ.머리말
Ⅱ.西溪 朴世堂의 生涯
1. 40대 이전의 생애
2. 40대 이후, 재야에서의 생애
Ⅲ.老ㆍ壯 註解의 배경 및 의의
1. 老ㆍ壯 註解의 배경
2. 老ㆍ壯 註解의 의의
Ⅳ.西溪 朴世堂의 사상
1. 西溪의 학문방법론
2. 西溪의 인간론
3. 西溪의 실천론
Ⅴ.맺음말
<참고문헌목록>
본문내용
Ⅰ. 머리말
필자가 박세당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은 3학년 때, 남당 한원진의 『주자언론동이고』를 읽으면서 부터였던 것 같다. 남당 한원진은 우암 송시열의 제자인 권상하의 직전으로써, 숙종 년간에서 영조 초반까지 생존한 완벽한 주자학자이자, 노론계 학자이다. 한원진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조선후기는 예송의 시대이며, 서인정권의 정치적 우위 속에서 진행된 역사라는 것을 알았다. 인조반정으로 정권을 잡은 서인이 실질적으로 정치적 열세를 보였던 것은 기사환국 당시에 송시열이 사약을 받고 죽은 이후 외에는 없었다. 2차 예송의 종결로 남인이 정치적 우위를 가졌다고 하지만 인조 이후 영ㆍ정조기의 탕평정치시기까지 서인의 우세 속에서 남인의 우위는 어느 사건을 계기로 살짝 드러나는 정도였다.
이 시기에는 송시열에 의해 교조적으로 주자학에 대한 신봉이 시작되고, 이로 인해 노론과 소론이 분리되는 등의 사상적 격변까지 발생한다. 그리고 결국 노론계열이 정치적 우위를 차지한 상황에서 주자학을 신봉하지 않으면 이단이자 사문난적으로 몰려 죽음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정치ㆍ사상적으로 완고했던 시기에, 박세당은 도가서적에 주해를 달고, 유교 경전에 새로운 주석을 다는 등의 행위를 한다. 그리고 결국 노론계열로부터 사문난적으로 지목되고 유배되어 죽었다. 그러나 서인 출신인 그가, 왜 그러한 반주자학적 행위를 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따라서 많은 선행 연구업적들을 참고하며, 필자가 따로 서계의 저서인 『사변록』과『남화경주해산보』를 독파하여, 그 사상의 성격에 대해 분명히 하고자 한 것이다.
박세당에 대한 학문적 관심과 연구는 1960~70년대 이병도, 윤사순에 의해 이루어졌고, 이후 경학, 반주자학, 실학, 양명학, 노장학 등과 관련하여 그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최근에는 박세당의 『신주도덕경』과 『남화경주해산보』에 관한 연구가 좀 더 세밀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박세당의 유학 사상과 노장 사상의 관련성이 좀 더 분명하게 밝혀지고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