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설사] 자연법 사상
- 최초 등록일
- 2002.05.17
- 최종 저작일
- 20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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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자연법 사상의 정의
* 케네의 자연법 사상
* 아담 스미스의 자연법 사상
* 자연법 사상과 경제학의 성립과의 관계
* 자연법 사상의 의의
본문내용
* 자연법 사상의 의의
자연법 사상가에는 그리티우스에서 출발하여 영국과 프랑스쪽에서는 홉스, 루크, 몽테스키외, 루소 등으로 이어졌고 독일 쪽에서는 푸펜도르프, 토마지우스, 볼프 등으로 계승되었다. 양 계통의 차이는 영국이나 프랑스 쪽이 혁명적 사상으로 발전했다면 독일 쪽은 공공복지를 중시하는 계몽절대주의와 결합되었다는 점이 차이이다.
즉 18세기 프로이센에서는 이성법 사상을 군주가 스스로 수용하여 계몽전제군주라고 자처했던 것이다. 이것은 독일의 무정부상태에 기인한 바 크다. 당시 독일 군주는 로마법이든 이성법이든 자신의 권위를 확대할 수 있는 것이면 무조건 받아들이려는 입장이었다. 또 당시 독일의 이성법 이론가들도 사회상황의 무정부성 탓에 절대주의적 사상의 경향이 있었다. 한편 18세기 프랑스는 이미 중세이래 중앙집권적 정책을 꾸준히 실시해왔으므로 자연법 사상은 반봉건, 반절대주의 혁명사상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것이 혁명적 사상일 수 있었던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당시의 사회상은 중앙집권적, 절대주의적 정책이 실시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중앙의 권력은 지방 구석구석까지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지방에는 지역적 토호세력이 상당부분 존재하였으며, 이들은 민중을 착취하여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적립하는 봉건적 수탈을 자행하고 있었다. 또 중앙적 정치력의 공백은 각종 범죄집단, 산적이나 노상강도의 횡행을 막을수가 없었다. 게다가 중앙의 국가 역시 국왕의 가산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어서 국가를 혼인이나 상속에 의하여 차지하는 봉건적 관행이 일소되지 못하고 있었다. 요컨대 절대주의 국가도 여전히 봉건적 성격을 일정정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