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전쟁
- 최초 등록일
- 2010.06.06
- 최종 저작일
- 20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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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전쟁
4차 십자군 전쟁
본문내용
이슬람 교 세력이 그리스도의 무덤을 파괴하고 예루살렘 성지를 강탈하자 유럽 크리스트 교 세계가 옛 성지를 회복하려고 일으킨 전쟁이다. 십자군 전쟁은 11세기 말부터 13세기까지 8차례에 걸쳐 일어났다. 십자군이란 명칭은 전쟁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의복에 십자가 표지를 붙인 데서 유래되었다.
1070~1071년 셀주크 튀르크는 지중해 동쪽 해안에 진출하여 팔레스티나 성지를 점령하고 순례자들을 박해했다. 그런데 순례는 초기 교회 때부터 크리스트 교인들의 신앙 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으므로, 성지와 순례자를 방어하고 보호하는 일은 모든 크리스트 교인들의 의무로 생각되었다.
십자군 전쟁의 기본 동기는 종교에 있었다. 십자군 참가는 곧 그리스도를 위해 자기 생명을 바치겠다는 개인 신앙 차원에서의 서원을 의미했다. 하지만 십자군 전쟁에 가담한 동기는 세속적인 면에서도 찾을 수 있다. 십자군에 참가하는 동안 교회가 참가자의 가족과 재산을 보호하는 물질적인 이익과 대사(大赦)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탈리아의 서지중해 지배권을 이슬람에게서 탈환하려는 욕구도 있었다. 이외에 교황은 십자군 전쟁을 이용해 카노사의 굴욕 이후 신장된 교황권을 확립하고, 동서 교회의 통합을 시도했다. 모험심과 호기심, 정복 욕구도 한 몫 했다.
8차에 걸친 대원정 중에서 제1차 원정과 제4차 원정이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 십자군 전쟁은 성지 회복이라는 원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서구 사회가 근대로 넘어가는 계기를 마련했고, 기사 수도회를 출현시켰다. 기사 수도회는 은둔적인 수도 생활은 물론 병든 순례자를 위한 봉사와 이교도들로부터 성지를 보호하는 등의 외적 활동까지 활발하게 전개했다. 또한, 십자군 전쟁은 비잔티움 문화와 이슬람 문화를 접목시킨 스콜라 사상의 토대를 마련했고, 서구의 공동체 의식을 크게 강화시켰다. 유럽은 십자군 전쟁으로 이슬람 교도에게 빼앗겼던 지중해를 회복했으며, 베네치아, 제노바 등의 지중해 연안의 이탈리아 도시들은 부를 축적하고 괄목할 만한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 동시에 중세 사회는 밖으로 그 힘을 과시한 계기가 되었다. 십자군 전쟁은 교황권을 신장시키는 계기도 되었지만, 동시에 십자군 전쟁의 실패는 교황권을 크게 실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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