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기독교 박해2
- 최초 등록일
- 2010.06.05
- 최종 저작일
- 2010.06
- 5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무료
다운로드
소개글
로마의 기독교 박해2
목차
1. 탄압 속에서 성장한 크리스트교
2. 로마 행정구역과 일치하는 교구제도의 확립
3. 로마가 전통적으로 믿었던 종교와 크리스트교
4. 교세가 커질수록 박해도 커지고...
본문내용
1. 탄압 속에서 성장한 크리스트교
사도 바울이후, 극심한 탄압을 겪으면서 크리스트교는 교세를 확장해 나간다. 도대체 어떤 힘이 정치적 탄압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트교를 발전시킨 것일까?
로마 황제들은 지속적으로 크리스트교를 탄압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크리스트교의 일신 사상이 로마 황제 체제에 위협이 되기 때문이었다. 기본적으로 크리스찬들은 로마 황제가 아닌 하느님을 숭배한다. 황제가 탄압하면 숨어서 예배를 드리면 그만이다. 지하공동묘지(카타콤)에서 예배를 하는 크리스찬들은 지독하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기본적으로 만민에 대한 사랑과 평등을 강조하는 크리스찬은 정복 국가인 로마의 이상과도 맞지 않는다. 로마는 병영제도에 따라 시민권을 분배하고, 정복사업에 따라 경제체제를 확장시킨 말 그대로 <제국>이었다. <제국>에서 군대를 가지 않는 다는 것은 곧 국가체제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었다.
반면, 크리스트교의 만민애는 하층민뿐 아니라 지배층에도 매력적인 것이었다. 처음 로마의 지배층은, 예수의 부활과 구원에 대한 믿음을 <로마 신화> 정도의 이야기로 치부했었다. 그러나, 2-3세기가 지나면서 로마인들은 점차 이 매력적인 종교에 대해 적응해 나가기 시작한다.
3세기 이후, 점차 쇠약해져 가던 로마는 현실로부터 눈을 돌려 내세도 생각하게 되었다. 믿음이 곧 구원이라는 기독교 이념은 단순하면서도
4. 교세가 커질수록 박해도 커지고...
크리스트교의 교세가 확장될수록 반대로 박해하는 사람들의 강도도 더해져갔다.
네로 황제는 로마의 대화재가 발생하자 그것을 모두 크리스트교 소행으로 몰아 수많은 예수인들을 죽였다. 5세기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아예 칙령을 발표하여 크리스트교인들이 종교적 활동을 하느라 국가 대업을 경시한다면서, 크리스트교인들이 교리를 내세워 국가 사업을 방해하는 것을 막아 버렸고, 반대하는 자들을 모두 죽여 버렸다.
그러나, 4세기 로마 사회는 몇몇 크리스찬을 죽인다고 사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였다. 밀려오는 게르만 족들을 막을 수 있는 힘이 로마에게는 없었고, 정복 전쟁 중단으로 발생한 수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체제 전환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결국,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