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의 불교철학- 일심과 화쟁
- 최초 등록일
- 2010.05.27
- 최종 저작일
- 2009.12
- 11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000원
소개글
원효의 생애과 불교철학인 일심 화쟁 십문화쟁론 정토종 대승기신론소에 대해 논의
목차
1. 신라통일 이후 불교철학
2. 원효의 생애
3. 『대승기신론소』
4. 원효의 ‘일심(一心)’철학
5. 원효의 화쟁철학
6.
본문내용
통일 후 안정된 사회분위기 속에서 교학 연구가 발달하여 열반종·계율종·법성종·화엄종·법상종 등 교학의 연구가 활발했다. 의상(義湘)은 671년 귀국하여 부석사를 중심으로 화엄학을 강론하여 오진(悟眞)·지통(智通)·표훈(表訓)·진정(眞定) 등에 의해 크게 화엄종을 이루었다. 현상세계의 모든 대립물에 차별이 없다는 화엄사상은 통일 후 삼국민을 융화시키고, 신분간의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그리고 신문왕 때 국로(國老)를 지낸 경흥(憬興), 원측(圓測)의 제자로서 효소왕 때 귀국한 도증(道證)과 그 제자 태현(太賢) 등에 의해 유식학이 연구되어 법상종(法相宗)이 형성되었다. 화엄학과 유식학을 비롯한 불교교학의 연구는 인간과 자연의 본질 및 현상세계를 분석함으로써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새로운 관계를 맺게 했다는 점에서 전통신앙보다 발전된 것이다.
2. 원효의 생애
신라에 불교가 공인된 지 90년 만에 태어난 원효[元曉; 617(진평왕 39)~686(신문왕 6).]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대의 불교사상가이자 사회지도자였다. 그는 해박하고 심오한 불교 학해(學解)로 방대한 분량의 불교 관계 저술을 남겼다. 속성은 설(薛), 아명은 서당(誓幢)·신당(新幢)이다. 출가한 뒤 스스로 첫새벽[始旦]을 뜻하는 원효라고 이름지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