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칼라목욕장
- 최초 등록일
- 2010.05.19
- 최종 저작일
- 20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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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로마시대 카라칼라욕장에 관하여
목차
□ 카라칼라 황제
□ 카라칼라 욕장의 구조
□ 목욕문화
□ 욕장 이용방법
□ 로마시대 목욕탕의 조건
□ 난방시스템
□ 목욕탕의 쇠퇴
□ Aqueduc
● 참고문헌
본문내용
본인은 육체의 피로를 풀기 위해서나 목욕 후의 상쾌함이 좋아서 목욕탕을 자주 찾는 편이다. 이렇게 우리에게 유익함을 주는 목욕탕이 로마시대에도 존재했다. 현대 시설과 견주어볼때 크게 부족한 점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럼 로마시대에 있던 목욕탕은 어떤 시설들을 갖추고 있었으며 당시의 목욕문화 등을 알아보도록 하자.
초기 로마 인들은 일과 후에 팔, 다리를 씻는 정도였고, 한 주에 해당하는 9일에 한 번 목욕을 했다고 한다. 테베레 강에서 목욕하는 관행이 없어지지는 않았고, 부엌에서 온수욕을 하기도 했지만, 그리스 세계의 영향을 받아 부자들이 집안에 목욕실을 짓고 시내에 목욕탕 건물이 들어서고서야 목욕 관행은 일상화,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이 목욕탕들은 개인이 영리 목적으로 운영하는 사설 목욕탕이었는데, 그중에는 일반인들이 드나드는 혼잡하고 시끄러운 대중탕을 기피하는 사람들을 고객으로 하는 목욕탕도 따로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보통 귀족이 대부분이었다. 사실 집 안에 목욕실이 있어도 준비하기 번거로운 데다 목욕탕 내에서의 교제가 중요했기 때문에 귀족들은 이러한 사설 목욕탕을 주로 이용하였다. 품페이 유적지에서 볼 수 있는, 목욕실들로 이루어진 특이한 구조 때문에 일반 가옥들과 확연히 다른 가옥들이 그것이다.
기원전 2세기 무렵 로마에 공중목욕탕이 들어섰다. 이때에도 남녀 탕 구별은 있었는데 개인 목욕탕을 가리키는 `balnea` 와 여성 전용탕을 가리키는 `balneae`가 그것이다. 대중목욕은 귀족 뿐만아니라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들도 누릴수 있는 진정한 휴식처 였기에 이후로도 황제들은 민심을 얻을 목적으로 크고 많은 목욕탕을 축조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그 수가 엄청나게 불어났는데, 가장 규모가 큰 카라칼라 황제때의 카라칼라 목욕탕은 탕이라는 개념을 초월하여 우선 목욕탕 내부에 사우나실, 냉탕실, 온탕실, 욕조, 수영장등이 들어서 있다. 직사각형의 거대한 목욕탕 건물의 외부로는 여러 조각상들이 장식된 주랑들이 도열해 있었고, 출입구 좌우로는 바깥쪽을 향해 셀 수도 없이 많은 가게들이 늘어서 있었다. 또 정원, 휴게실, 체육관, 산책길,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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