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운동혁명사 유적지답사
- 최초 등록일
- 2010.05.13
- 최종 저작일
- 20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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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운동 유적지답사 기행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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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학기 수강신청을 하면서 동학농민혁명사라는 수업은 처음에 나에게 ‘유적지 답사’에 대한 부담감을 적지 않게 주었었다. 일정에 대한,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나의 무지가 조금은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역사에 대한 수많은 자료를 대하는 것보다 한 번의 유적지 답사가 더 뜻깊고 역사적 사건에 대한 올바른 이해방법이라 생각되어 답사를 가기로 결정했다.
2002년 4월 28일 일요일, 드디어 나는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답사의 길에 올랐다. 막연한 설레임과 역사의 흔적을 보게 되리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출발한 시각은 예정보다 늦은 8시30분 경이었다. 전날 개인적인 사정으로 2시간 정도밖에 자지 못했던 나는 차를 타자마자 곯아 떨어졌고, 답사 도우미의 안내 방송에 깨고 일어나 보니 난 어느 새 백산성 터(사적 제409호)에 와 있었다. 차에서 내려 얼핏 본 백산은 정말 산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낮은 작은 동산에 지나지 않을 정도였다. 무리를 지어 오르는 답사 참가자들을 처음 맞이해 준 건 농악패였다. 날씨만큼이나 경쾌한 농악소리를 들으며 올라선 백산에는 이미 많은 참가자들이 모여 있었고, 개회식을 준비하는 운영진들이 바쁜 움직임과 동학혁명 백산창의비가 눈에 띄었다. 잠시 숨을 돌려 백산에서 내려다 본 고부 들녘은 정말 넓디넓은 평야였고, 이 넓은 평야 한 가운데에 이렇게 낮은 산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농민들이 모여 진을 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극 ‘천명’에서 보았던 것처럼 "서면 백산(白山), 앉으면 죽산(竹山)"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그런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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