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과 김만중의 문학
- 최초 등록일
- 2010.04.18
- 최종 저작일
- 20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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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 글은 허균과 김만중의 생애와 세계관, 문학을 비교해본 리포트 입니다.
목차
1. 허균의 생애와 세계관
2 . 김만중의 생애와 세계관
3. 허균과 김만중의 작품 비교
본문내용
1. 허균의 생애와 세계관
북한문학사에서 허균(1569 - 1618)은 손곡 이달에게서 배운 것을 계기로 봉건사회의 불합리성에 눈뜨고 선진적인 세계관을 세워나간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으며, 임진왜란 당시 사절단의 일원으로 중국을 다녀와 견문을 넓혔고 전쟁 중 조관 벼슬을 하면서 삼남 일대 강원도 등을 다니면서 근로하는 평백성들과 깊이 사귈 수 있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허균은 봉건사대부들의 `적서차별` 정책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였고 서자들의 처지개선을 위한 박응서, 서양갑 등의 투쟁을 적극 도와주었다고 결론짓고 있다.
허균은 유능한 스승의 지도 밑에 부지런히 공부하여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1594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섰으며 사절단의 일원으로 중국에 다녀온 일도 있었다. 그는 일본침략자들을 반대하는 간고한 전쟁시기에 정부의 벼슬살이를 하면서 양반사대부들의 비겁성과 무능, 일본 침략자들의 살인귀적 잔인성 민중들의 처참한 재난과 애국적 헌신을 직접 목격하고 체험하면서 정의감과 조국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더욱 굳혀 갔으며 다른 나라로의 여행과 외국사람들과의 접촉을 통하여 세계에 대한 시야와 견문을 더욱 넓혀갔다. 그 자신의 기록들에 의하면 허균은 한때 전원에 돌아가 은거생활을 하고 싶은 생각도 하였다. 그의 시 [궁중의 첫 여름]은 그러한 심정을 토로한 것이다.
전원이 거칠었다.
언제나 돌아가리.
늙은 몸이라
벼슬 생각 별로 없네.
적막한 숲 속에
봄은 저물었는데
성근 비마저 내려
장미꽃 젖어드네
그는 자기의 저서 [한정록]에서 은일생활은 "세상의 속된 것을 씻어버리고 더러운 것을 깨끗이 하는데 족하다"고도 썼다. 이러한 자료들은 허균이 확실히 어지러운 관료사회에 휩쓸려 몸을 더럽히는 것보다는 자연산수속에 묻혀 깨끗이 사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허균은 임진왜란후 한 때에 나라의 양곡을 운반하는 짐배들을 관리하는 조관벼슬을 하였는데 이로 하여 삼남 일대와 강원도의 강릉, 삼척 등지를 두루 다니면서 근로하는 일반 백성들과 깊이 접촉할 수 있었으며 금강산을 비롯한 조국의 명승고적을 유람하기도 하였다. [조관기행], [금강산기행] 등은 바로 이 시기의 생활체험에 기초하여 창작된 작품들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