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상섭론
- 최초 등록일
- 2010.03.28
- 최종 저작일
- 20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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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염상섭의 생애와 그의 작품의 특성에 대해서 연구하여 쓴 발표문입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염상섭의 생애
① 시간적, 공간적 배경
② 주위의 영향
③ 흥미로운 기록
2. 염상섭 작품의 특성
① 현실인식, 자아의 발견
② 민족 정체성 부각
③ 문체적 특징
Ⅲ. 결 론
※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 론
우리는 지금까지 작가 염상섭의 작품들 중 「표본실의 청개구리(1921)」,「만세전(1922)」,『삼대(1931)』,「양과자갑(1948)」,「두 파산(1949)」, 「절곡1957()」, 「얼룩진 시대 풍경(1961)」까지를 순서대로 읽고 분석해 보았다. 작가의 생애는 그의 문학관 혹은 작가론에 큰 영향을 준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염상섭의 생애에 포커스를 맞추고 그의 삶이 문학관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그러한 것들이 그의 문학에 어떻게 표출되는지를 알아보고 이를 토대로 염상섭의 작가론, 작가의식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Ⅱ. 본 론
1. 염상섭의 생애
염상섭은 189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보성중학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1912년(16세)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1918년 22세에 경도 부립 제 2중학교를 졸업했다. 1919년(23세) 오사카에서 3.1운동 소식을 듣고 오사카 천왕사공원에서 거사하기로 하였으나 피검되어 옥고를 치렀다. 옥중에서 《어째서 조선은 독립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라는 글을 써 아사히신문사로 보냈다. 그 해 10월에 「암야」의 초고를 작성하고 『삼광』에 작품을 기고하는 등 20대 초반부터 작품 활동을 펼쳤다. 1920년(24세) 동아일보의 창간 정경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남궁벽, 김억, 오상순 등과 함께 『폐허』동인을 결성하였다. 1921년(25세) 『개벽』지에 단편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발표하였고, 1922년(26세) 최남선이 주재하던 주간종합지 『동명』에서기자로 활약했다. 그 해 「묘지(만세전)」를 『신생활』7월~ 9월 호에 연재하였다. 학예부장으로 재직하던 조선일보에 1931년(35세) 『삼대』를 연재했고, 같은 해 직장을 그만뒀다. 1936년(40세) 진학문의 주선으로 만주국의 「만선일보」편집국장으로 갔다. 해방 이후로도 계속해서 많은 작품을 통해(특히 단편 소설에 주력) 문학적 활동을 이어나갔고 1963년 성북동 자택에서 67세의 나이로 별세하여 방학동 천주교 묘지에 안장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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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염상섭 연구』. 서울대학교 출판부. 1987.
이보영.『난세의 문학』. 예지각. 1991.
이균영. 『신간회 연구』. 역사비평사. 1993.
유문선. 「식민지 조선사회 욕망과 이념의 한 자리」.『민족문학사 연구』제19호. 창작과 비평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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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수. 「염상섭, 예술, 근대성」. 창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사림어문학회.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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