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강석굴
- 최초 등록일
- 2010.03.22
- 최종 저작일
- 20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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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운강석굴에 대한 내용을 담았습니다.
목차
○ 운강석굴이란?
○ 운강석굴의 형식
1. 초기 담요5굴(제16~20굴)
2. 효문제 탁발시기의 중심탑주식(제1~6굴)과 전후쌍굴식(제7~15굴)석굴
3. 효문제 이도 이후의 석굴(제21~46굴 및 기타)
본문내용
○ 운강석굴이란?
불교는 1세기에 중국에 유입되어 4세기 이후에 신속하게 전파되었다. 중국 고대 불교사에는 황제가 일으킨 전국 규모의 훼불 사건이 네 차례 있었는데, 그 첫 번째가 446년에 발생한 북위 태무제의 훼불 사건이다. 폐불 후 6년(452) 그 뒤를 이어서 즉위한 문성제(태부제의 손자)는 불교 부흥의 칙서를 내리고, 460년에 도읍지 평성(平城) 지금의 산시성(山西省) 다퉁(大同)의 서쪽 교외에 있는 무주산(武周山)에 굴을 파고 불상을 조각하게 했으니, 무주산이 바로 지금의 운강(雲崗)이다.
5세기 후반 대동은 세계 최대 도시의 하나로 실크로드의 한 끝에 있으면서 인도, 서역제국, 중국 동북부 동이족의 문화와 불교예술의 집결지였다. 운강석굴은 산에 의지해 물을 곁에 두고 앞에는 나무가 무성하다. 석굴은 자연의 사암 절벽을 개착해서 만들었으며, 동서 길이 약 1,000미터에 걸쳐 배치된다. 현존하는 주요 동굴은 45개이고 부속 굴감은 207여 개이며, 불상과 보살, 비천 등의 조각이 51,000여 존에 이른다. 석굴의 규모가 거대하여 부처의 높이가 17미터에 달하는 것도 있는 반면에 가장 작은 것은 10센티미터도 안 된다. 운강석굴의 개착은 북위 문성제 화평초년(460)에 시작하여 효문제 태화18년(494)까지 대부분 완성 되었으며 이후 지방 호족들에 의해 효명제 정광5년(524)까지 계속되었다. 후대에는 계속적인 중수가 이루어지는데 당(唐) 정관15년(641) 및 요대에 대규모의 수리가 있었으며 동굴 앞 절벽 면에 대형 복조 처마를 결구하여 운강 10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후 금, 원, 명, 청 때에도 수리가 있었다.
운강석굴은 낙양의 용문석굴, 돈황의 막고굴과 함께 중국 3대 석굴의 하나로서 그 가운데 가장 예술적 가치가 높으며 섬세하고 아름다운 채색 불상도 볼 수 있다. 석굴 조각을 통해서는 당시의 건축양식이나 의상 액세서리, 음악, 무용 등 여러 가지 재료를 볼 수 있어서 중국사회사, 불교사, 예술사를 연구하는 데 진귀한 자료가 된다. 또한 인류문명에 남겨진 고귀하고 아름다운 유산이자, 북위시대 수많은 장인들이 완성한 위대한 예술의 결정체이다. 운강석굴은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그러면서 굴 전면을 대대적으로 정비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