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개소문
- 최초 등록일
- 2002.04.28
- 최종 저작일
- 20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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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연개소문>> → 고구려의 마지막 기둥 연개소문
할아버지는 자유이고, 아버지는 태조로 이들은 모두 막리지의 지위에 올랐다고 천남생묘지에 기록되어 있다. 그의 성씨에 대하여 중국측 기록에‘천’또는‘전’이라 하였다. 연개소문은 고구려에서 가장 권력이 센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성품이 호방하고 의표가 웅위하였다고 한다. 열다섯살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부족장들은 그에게 막리지의 중책을 맡겼다. 그는 곧바로 반대파에 대한 탄압과 제거를 감행하였다. 당시 안시성의 성주는 그의 반대파였으므로 이를 공격하였다. 그러나 안시성의 공방전은 승패가 나지 않아 양자간에 타협으로 일단락 되었다. 결국 연개소문은 안시성주의 지위를 계속 인정하였고, 그 대신 안시성 주는 새로운 집권자인 연개소문에게 승복하였다. 이 안시성 주와의 협상이 보여주듯이, 연개소문의 집권은 고구려 하대의 귀족연립정권체제를 근본적으로 타파하였던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수나라 말기의 혼란과 분열을 통일하고 당나라의 세력이 강화되어감에 따라, 당과 고구려의 관계는 긴박해져 갔다. 서쪽으로 고창 국을 멸하고, 북으로 돌궐을 격파 복속시킨 뒤, 명실공히 중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구축하려는 당의 팽창 책은 자연 동북아시아 방면으로 그 압력을 가중시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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