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고려사회의 귀족제설과 관료제설
- 최초 등록일
- 2010.02.06
- 최종 저작일
- 20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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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 한국사 ) 고려사회의 귀족제설과 관료제설
목차
1. 머릿글
2. 양설의 비판과정
2-1. 음직의 기본적 연구
2-2. 귀족제사회설
2-3. 관료제사회설과 귀족관인사회설
3. 실증연구 및 개념적 분석
3-1. 실증적 연구
3-2. 관료제와 귀족제의 개념 검토
4. 반귀족제론
5. 음서제의 재검토
6. 새로운 시각
본문내용
1. 머릿글
고려를 귀족사회로 보는 시각은 일제시기부터 있었으며, 고려지배층에 대한 파악은 1960년대 변태섭교수에 의하여 적극적으로 시도되었다. 그 역시 고려를 귀족사회로 파악하였고 그 특성을 연구하였다. 하지만 고려사회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새로운 가설이 제기되었다. 박희창교수는 1972년에 「高麗 明宗代 政權의 性格」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역사학회의 월례발표회에서 발표하였고, 정설이 되다시피한 고려의 귀족제도를 부정하고 새로이 관료제도설을 제기하였다.
박희창교수의 발표는 고려사회에 대한 종래의 전통적인 학설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었다. 비록 발표 후에 계속된 토의에서는 그가 제기한 고려관료제사회설이 비판을 받았지만, 이는 고려사회의 성격에 대하여 정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과연 고려사회는 귀족제도와 관료제도 중 어느 것이었으며 또한 한 가지로 결정한다면 무엇을 근거로 하고, 그것은 역사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었는가 대하여 생각할 필요가 있겠다.
2. 양설의 비판과정
2-1. 음직의 기본적 연구
김의규교수는 「高麗朝蔭職小考」라는 논문을 통해 고려조의 관직에 진출하는 방법으로 과거(科擧) 뿐 아니라 음서(蔭敍)를 통해서도 많은 이들이 관직에 등용되었음을 주장하였다. 음서제도는 고려를 귀족사회로 여겨지는 가장 특징적인 제도라고 할 수 있으며 음서제도의 시행범위를 두고 계속적으로 논쟁이
5. 음서제의 재검토
박용운교수의 「高麗時代 蔭敍制의 實際와 그 機能」, 김용선교수의 「高麗時代의 蔭敍制度에 대한 再檢討」, 한충희교수의 「高麗前期社會의 性格에 대하여」라는 이상 세 논고를 통해 음서제를 분석하여 고려시대의 사회성격에 대한 정밀한 연구를 시도하였다. 대동소이한 차이를 보이는 논고들 속에서도 약간씩의 차이들을 보이고 있다.
우선 박용운교수는 고려시대의 음서는 조종묘예(祖宗苗裔) 조종묘예는 왕실의 후손이다.
와 공신 자손 및 오품이상의 일반 고급관료 자손을 대상으로 하는 세 종류가 있었음을 주장했다. 이 가운데 전자는 왕족을 대상으로 한데 비해 뒤의 두 가지는 관료를 대상으로 하였다는 데 차이가 있었으며, 또 그 대상의 종적관계로 보아 앞의 두 가지가 친족의 원근에 별다른 제약을 받지 않은데 비해 후자는 子 孫代까지로 한정되는 차이가 있었다고 비교했다.
음서는 일반적으로 새로운 국왕의 즉위나, 세자 책봉, 국가의 경사, 국가의 재난, 민심수습의 방책 등 여러 가지 국가의 대소사와 함께 시행되었다. 이밖에도 몇 가지의 추가적인 예들이 있으나 모두 다 포상이나 특사와 같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 외에도 상례주음(常例奏蔭)이라 하여 정기적으로 시행되었다고 추측한다. 고려의 제도를 대체적으로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