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의 역사]제국주의의 대립과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한 심층분석
- 최초 등록일
- 2010.01.13
- 최종 저작일
- 20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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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세계사][제국주의의 역사]제국주의의 대립과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한 심층분석
목차
1. 들어가기
2. 제국주의의 대립과 제 1차 세계대전
삼국동맹과 삼국협상
[사료] 전쟁이란 왜 일어나는 거지?
사라예보 사건
참호전과 총력전
신무기의 등장
Tip. ‘빵과 화약의 경계’ 하버의 위험한 과학
러시아 혁명과 미국의 참전
독일 혁명과 전쟁의 종결
Tip. 캐테 콜비츠(1867~1945) ‘전쟁은 이제 그만’
제1차 세계 대전의 영향
3. 참고문헌
본문내용
1. 들어가기
제1차 세계대전은 제국주의 전쟁의 성격을 띤 전쟁이었다. 19세기 후반 미국과 독일에서 생산 기술 및 유통의 혁신으로 대기업이 출현하면서 독점 자본주의에 돌입하게 되고 그 결과 원료 및 상품 시장의 확보를 위한 국가적 차원의 대외 팽창이 불가피해졌다. 영국은 미국과 독일 등을 견제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제국주의 정책을 펴 나가기 시작하는데, 그 과정에서 제국주의 국가 간의 상호 영향력의 차이에서 오는 불평등의 심화로 모순이 누적되는 가운데, 새롭게 부상한 독일이 제국주의의 재편을 요구하고 나옴으로써 긴장이 고조되었다. 세계 열강들의 해외 식민지 및 세력권의 확보를 위한 충돌 가능성은 높아만 간 것이다. 특히 영국과 독일이 맞대결을 펼치는 분쟁의 장은 오스만 제국을 포함한 서아시아와 발칸 반도였다. 영국의 3C(캘커타-카이로-케이프타운) 정책과 독일의 3B(베를린-비잔티움-바그다드) 정책이 맞부딪친 탓이었다.
사라예보 사건을 계기로 시작된 전쟁은 순식간에 독일,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한 중앙 제국과 영, 프, 러를 중심으로 한 삼국협상 진영 사이의 국제전으로 비화되었다. 세계적 규모로 진행된 전쟁은 상당기간 동안 승패의 전망을 점칠 수 없을 정도로 장기전에 말려들었고, 결과적으로 전장의 병사는 물론 온 국민이 전쟁에 휘말려드는 총력전의 양상을 띠었다. 대전이 끝날 때까지에는 6대륙에 걸친 30개국이 전란에 휩쓸렸고 그 총인구는 무려 14억에 이르렀다. 수많은 병사가 죽고, 엄청난 전쟁 비용이 소모되는 것은 물론이고, 후방의 국민들도 전쟁으로 인해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에도 제국주의적 세계 체제에서 경쟁자 독일을 제거했을 뿐, 제국주의 질서는 여전하였고, 비유럽 세계의 식민지나 종속국은 갈망하던 민족의 자유를 되찾지 못했다.
참고 자료
김택현 편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