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룡 박사에 대한 평가
- 최초 등록일
- 2009.12.22
- 최종 저작일
- 2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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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박형룡 박사에 대한 평가 자료입니다.
목차
1. 박형용의 생애
2. 박형용의 교육적 배경(1887~1927)
(1) 유교의 영향
(2) 숭실전문(1916~1920)
(3) 프린스턴신학교(1923~1926)
(4) 루이빌 남 침례교 신학교(1926~1927)
3. 한국교회의 변증학자(1927~1938)
4. 박형용 신학의 중심사상
(1) 종교의 권위(1930)
(2) 신학난제서평(1935)
(3) 박형용의 정통신학이해
(4) 한국 장로교회의 신학적 전통(1976)
5. 결론
6. 토의
7. 참고도서
본문내용
2. 박형용의 교육적 배경(1887~1927)
박형용은 어린 시절 유교교육을 받았고, 그 후 선교사들이나 혹은 그 선교사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세운 소학교를 전전하였다. 정식으로 중등교육에 접한 것은 그가 16세 되던 해 신성중학교에 입학하면서였고, 이어 평양의 숭실전문에 입학하였다.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 2년간 남경의 금릉대학에서 공부하였고(인문학사 B.A 학위취득), 도미하여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수학한 후(신학사, Th. B.와 신학 석사 Th. M. 취득), 캔터키주 루이빌에 소재한 남침례교 신학교에서 박사학위(Ph. D.)를 받았다.
(1) 유교의 영향
a. 학문의 태도 : 술이부작(述而不作)
박형용의 학문하는 태도는 전통적인 유교와 유사하다. 박형용은 자신의 학문하는 태도를 “… 정통신학을 그대로 받아서 전달하는데 있고 감히 무엇을 창작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옛 사람이 말한바 술이부작(述而不作)의 태도라 할 것이다”라고 여러 번 말하였다. 원래 술이부작(述而不作)의 태도는 공자가 “선왕의 도를 진술할 뿐이요 아무것도 창작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용한 말이다. 박형용은 자신의 변증학 신학에도, 루이스 벌콥의 신학과 개혁주의 신학자들의 책을 인용할 때도, 그리고 80년 전 이 땅에 선교사들이 와서 전하여 준 신학을 그대로 새 세대에 전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으로 생각했다. 이러한 태도의 배후에는 신학의 상황성을 극소화하고 신학의 과학적 성격을 강조하는 프린스턴의 신학방법론이 자리잡고 있다.
b. 정통과 이단의 이분법
박형용은 ‘옳은 가르침’ ‘옳지 못한 가르침’이라는 뜻의 orthodox와 non-orthodox를 번역 할 때, ‘정통’과 ‘이단’이라고 하는 유교적인 용어를 사용한다. ‘정통’과 ‘이단’은 단순한 종교적인 가르침만의 문제가 아니고, 사회적인 또한 정치적인 의미를 갖는다. 박형용에게서 ‘다원성’(多元性)은 인정되지 않는다. 이분법적인 사고를 가지고 신앙과 신학에 접근한다. 그에게서 김재준 등의 이른바 ‘자유주의자’들은 물론 이단이고, 여성 안수를 주장해도 이단이고, WCC에큐메니칼 운동을 지향하는 사람들도 이단이고, 유신진화론과
참고 자료
1. 장동민. 박형용의 신학연구. 서울: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8.
2. 한승홍. 한국신학사상의 흐름 하. 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1996.
3. 주재용. 한국그리스도교신학사. 서울 : 대한기독교서회, 1998.
4. 유동식. 한국 신학의 광맥. 서울 : 다산글방, 2003.
5. 송길섭. 한국신학사상사.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