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기사파-칸딘스키,마르크에 대해서
- 최초 등록일
- 2009.12.18
- 최종 저작일
- 20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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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청기사파-칸딘스키,마르크에 대해서
목차
■ 청기사파(Der Blaue Reiter, 1911∼1914)
■ 작가와 주요 작품
■ 마치며
본문내용
■ 청기사파(Der Blaue Reiter, 1911∼1914)
다리파보다 조금 늦게 좀 더 감성적이고 범자연적인 표현주의 미술이 남부 독일에서 일어났다. 1909년 뮌헨에서 칸딘스키와 마르크는 ‘청기사파’를 결성하였다. ‘청기사’의 용어는 칸딘스키와 마르크가 쓰던 작품 제명으로 그룹의 이름으로 쓰여진 것이다. 칸딘스키의 회고한 것에 따르면 1911년 당시 진델스도로프에 있던 프란츠 마르크의 집에, 이웃마을에 살던 칸딘스키가 자주 찾아왔다고 한다. 칸딘스키는 “우리는 둘 다 청색을 좋아했고 마르크는 말을, 그리고 나는 말탄 기사를 좋아했다. [페터 안젤름 리들의 ‘칸딘스키’에 인용된 칸딘스키의 회고록”라며 ‘청기사’라는 이름이 자연스레 생겨났다고 설명한다. 칸딘스키는 [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관하여 ]라는 책을 펴내며 추상예술에 대한 논리적 전개의 기초를 다졌다. 그 외 루소, 들로네, 클레, 말레비치 등이 있다.남부 독일은 다리파가 가진 표현 방법과 다른 구성을 나타내고 있는데 그것은 ‘존재’와 관련된 주관적인 견해와 원천으로서 상상력을 새로운 감각적 묘사, 색채를 통해 음악적 하모니를 나타낸다는 점이다. 이러한 것은 칸딘스키와 마르크가 주요 멤버인 이 그룹에서 이들이 범신론적인 세계관과 신비로운 내면화, 정신성을 강요한데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다리파와 같이 독일 낭만주의에 근거하거나 집단적 이미지를 내세우지 않았다.
이들의 주요 활동은 연감제목인 ‘청기사’라는 잡지 발행과 저서활동이 두드러지는데서도 알 수 있는데 미술 뿐 아니라 연극, 시 음악 등에서 발견되는 내용의 통일감, 필연성들을 미술과 연계시키면서 추상적인 면이 강조되고 있다. 자연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그것을 그들이 화면에서 색채와 공간구성이 보이는 관계에서 단적을 드러나며 추상미술이 구체적인 길을 여는 계기가 된다.
청기사파는 조형(눈에 보이는것)적인 효과를 무시하지 않고 동시에 형태와 그림의 내용을 조화시켰다. 화려한 원색을 주로 많이 사용였고 주로 독일 뮌헨에서 활동, 집단 공동작업을 하지 않았으며 급진적인 사화비판은 하지 않았다. 굉장히 개방적이어서 다른 나라 화가와도 접했으며 야수주의 화가들에게도 개방적이었다고 한다.
참고 자료
1) 김영나, <서양 현대미술의 기원 1880∼1914> 1996, 시공사
2) 김홍섭, <독일미술사-세계의 미술기행>2004, 도서출판 이유
3) 슐라미스 베어, <표현주의-현대미술운동총서>2003, 열화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