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 프랑코에 대해서
- 최초 등록일
- 2009.12.07
- 최종 저작일
- 20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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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프랑코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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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냐 현대사는 우리 한국처럼 커다란 상처를 안고 있다. 에스파냐 현대사를 상징하는 인물, 프란시스 프랑코. 군인이자 정치가로, 에스파냐의 총통 겸 수상을 지냈다. 원래 해군 출신이었으나 에스파냐 제국의 몰락과 함께 해군력이 쇠퇴하면서 육군이 되었다. 그는 에스파냐가 북아프리카로 식민지 팽창하는 과정에서 모로코 전선에서 군 경력을 쌓았다. 이 경험은 나중에 쿠데타를 일으킬 때 자신의 중요한 군사력의 기반이 되었다.
프랑코는 북아프리카 침공에서 뛰어난 공적을 세워 1926년 34세 나이로 장군이 될 정도로 명성을 떨쳤다. 1931년 에스파냐 왕정이 무너지고 부르주아지와 공화주의자들이 이끄는 공화국이 들어섰을 때 군부의 젊은 야심가 프랑코를 중심으로 한 쿠데타가 일어날 것이라는 소문이 끊임없이 나돌았다. 그는 본국에 배치되면서 1934년 군병력이 무정부주의자들의 봉기를 진압하는데 동원되는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그러다가 1936년 사회주의자, 공화주의자, 공산주의자, 무정부주의자의 연합인 인민전선이 집권하자 쿠데타에 대한 경고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는 공산주의자들을 포함한 급진세력이 모든 권력을 차지하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지 않았다. 마침내 1936년 모로코 용병을 포함한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공화정부에 반대해 반란을 일으키니 이것이 바로 에스파냐 내전이다. 그러나 자유주의자 출신의 공화국 정부 총리인 마누엘 아자냐는 파시스트의 쿠데타 위협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군부에서 세력을 키우고 있던 파시스트들에 대한 숙청 제안도 묵살했다. 심지어 쿠테타가 일어난 후 에스파냐 가톨릭교회와 거의 모든 부르주아지들이 드러내놓고 쿠테타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는데도 아자냐는 그들에게 타협의 손길을 뻗치는 반면 스스로 무장하여 파시스트들을 진압하려는 노동자들을 통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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