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모택동의 문화대혁명,평가
- 최초 등록일
- 2009.12.02
- 최종 저작일
- 20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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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모택동 - 문화대혁명 (文化大革命은 실제적인 내전이었다.)
1. 배경
1) 문화대혁명의 역사적 배경과 발생요인
2. 전개과정
제 1단계(1966.5~1969.4)
제 2단계(1969.4~1973.12)
제 3단계(1974.1~1976.10)
3. 평가
본문내용
2. 전개과정
제 1단계(1966.5~1969.4)
1966년 5월 중앙정치국확대회의와 동년 8월 8차 11중전회의의 개회는 "문혁"이 전면 발동하는 표지이다. 이 두 차례의 회의는 연이어 <5.16통지>와 ,관어무산계급문화대혁명적결정>을 통과시켰고, 소위 "팽진, 루스경, 육정일, 양산곤의 반당집단"과 "유소기, 등소평 사령부"에 대해 잘못된 투쟁을 진행했고 당 중앙지도기관에 대해 잘못된 개조를 진행하여 "중앙문화소조"를 성립하여 중앙의 대부분 권력을 장악하게 했다.
16개조 결정으로 문혁은 홍위병 운동으로 특징 지워지는 다음 단계로 돌입하였다. 8월 18일 처음으로 거리로 나온 홍위병들은 한 손에 빨간 [모택동 어록]을 들고 ‘조만유리.혁명무죄’를 주장하며 혁명은 모든 것을 정당화하며 그것을 수행하기 위한 일체의 불법행위는 죄가 없으며(革命無罪), 비록 공산당의 기본원리인 민주 집중제를 어기고 당과 상위기관에 반항한다해도(造反), 그것은 정당성을 가진다(有理)라는 구호를 외쳤다. 홍위병 운동은 전국으로 무섭게 확산되었고, 그들은 ‘小勇將’(소용장)이라는 호칭으로 영웅시 되었다.
이들은 ‘착취계급의 사구(四舊)<구사상, 구문화, 구풍속, 구습관>를 타파’하고 ‘무산계급의 사신’을 확립한다는 문화대혁명의 이름으로 모택동과 혁명파가 당권파에 대하여 전개한 탈권투쟁에 얽혀 들어갔다. 소용장이라는 이름으로 들뜬 홍위병들은 조반유리의 비호아래 거의 모든 것을 사구(四舊)라 배격하였다. 특히 홍의병들의 봉건주의 잔재의 청산이라는 명분으로 행해진 고적, 유물의 파손은 많은 반감을 불러 일으켰다.
참고 자료
http://blog.naver.com/yzlee1941?Redirect=Log&logNo=80059073876
http://blog.naver.com/yzlee1941/80060920297
http://cafe.naver.com/ssuchinese.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18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