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갑오개혁의 주도세력과 성격에 관한 학사 논문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갑오개혁의 주도세력의 유형
Ⅲ. 갑오개혁의 추진 과정
1. 제 1차 갑오개혁
2. 제 2차 갑오개혁
3. 제 3차 갑오개혁
Ⅳ. 갑오개혁의 영향과 성격
Ⅴ. 맺음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머리말
갑오개혁(甲午改革)은 1894년 7월 23일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으로 김홍집 내각이 성립된 이후 1896년 2월 11일 고종의 아관파천에 이르기까지의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이다. 1884년 갑신정변(甲申政變)의 실패 후 조선은 수구파에 의해 정국이 유지되고 있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발발하자 청군과 일본군이 국내에 상륙하여 내정에 개입하였고 동학농민군과 조선정부와의 화의 이후에도 일본군은 철수를 거부하고 청일전쟁을 도발하였다. 청일 전쟁 중에 일본은 조선에 강압적인 개혁을 요구하였다.
갑오개혁을 바라보는 시각은 갑오개혁이 타율적(他律的) 관점, 자율적(自律的) 관점, 절충적(折衝的) 관점으로 나뉜다. 타율론은 일본이 제시한 내정개혁(內政改革) 강론을 토대로 일본인 지도에 의해 진행되었던 개혁이었으나 조선인의 무능으로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에 반대적인 입장에서 제시되어진 것은 자율론 인데 이는 조선역사의 내재적 발전과 합법칙적 발전을 반영한 것으로 평가된다. 절충적 관점은 1894년의 개혁이 일본의 내정개혁안이 아니라 1884년 이래 개화파가 구상한 지도 원리였으며 사실상 부르주아 계몽사상가(啓蒙思想家)에 의해 추진된 것이라 하였다. 하지만 또한 부르주아 계몽사상의 본질에 의해 민중적․혁명적 에너지를 흡수할 수 없었다는 점, 일본군의 침략적 의도에 대해 과소평가 하는 정세인식의 오류를 가진 점에 의해 갑오정권이 일제와 공동행동을 추구하게 되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진 것으로 평가하였다. 갑오개혁이 위로부터의 개혁이었다는 점은 대체로 합의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본 고에서는 기존의 연구 성과를 참고하되, 갑오개혁의 주도세력과 갑오개혁의 활동을 종합적으로 고찰하면서 갑오개혁의 성격에 대해 재조명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주도세력들을 분류하여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개혁을 행하여 갔는지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갑오개혁이 끼친 영향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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