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조 <자유종>
- 최초 등록일
- 2009.10.31
- 최종 저작일
- 2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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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줄거리, 작가 소개, 작품 해설, 소설의 시대적 배경, 교과서 학습활동 및 해설
목차
<작가탐구>
☺한일 합병 전 후를 통해 살펴본 이해조 문학 경향
이해조의 대표작 「자유종」
<핵심정리>
<인물 바로보기>
<이해와 감상>
<작품의 형식상 특징>
본문내용
<작가탐구>
이해조-계몽 의식을 털어내고 재미를 보탠 ‘신소설’
친일 개화 문학의 이인직과 항일 개화 문학의 신채호 사이에 이해조李海朝 (1869~1927)
(이인직은 문학보다는 정치에 뜻이 있던 인물이었으며 한일합병 뒤로 이인직은 문학에서 점찬 손을 떼고 독자들 역시 그의 소설에 별로 흥미 없었음. 반면 정열적이고 실천적인 계몽주의자로 이인직의 대척점에 서 있던 신채호는 일제의 조선 강점과 때를 같이 해 해외에서 활동. 이와 같은 두 극단적 계몽주의자 사이에서 온건 개화론자인 이해조가「빈상설」「자유종」등을 발표하며 1910년대 신소설의 맥을 이음)
· 1869년 경기도 포천에서 인조의 셋째아들 인평 대군의 10대손으로 태어남
· 자라면서 신식 교육을 받지 않고 한시와 판소리에 관심을 가지며 혼자 문학 수업을 함
· 이해조의 아버지 이용철은 구국 운동 단체인 대한협회 회원으로 헌종 때 참봉과 진사를 지낸 인물. 지방의 토호로 상당한 재력가였으며, 고향에 근대 학교의 면모를 갖춘 화야의숙을 설립한 선각자이기도 함 → 이런 출신 배경은 이해조가 뒷날 정치적으로나 문학적으로 온건 개화파의 면모를 보이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줌)
· 이해조는 열아홉 나이에 과거에 급제해 진사가 되고 군수 자리에 앉지만, 벼슬에 별 뜻이 없었음. 오히려 신학문에 관심을 보여 포천에 청성제일학교를 세우기도 함
☺한일 합병 전 후를 통해 살펴본 이해조 문학 경향
한일 합병 전:
1910년 이전에 나온 논설인 「윤리학」과 토론체 소설인 「자유종」, 역사전기물인 「서사 건국지」등에서 계몽적 윤리관이나 자주 독립관이 보임 (사회 계몽과 구국 운동에 대한 관심은 후에 국체 운동 보상 운동으로 이어짐. 이해조는 양기택, 주시경, 이준, 노익형 등과 광무사를 경성해 이 운동에 앞장섬. 그러나 후기로 가면 이러한 움직임은 새로운 것에 대한 콤플렉스로 오래가지 못하고 일제 침략의 당위성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나아감)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