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조선시대 부세정책
- 최초 등록일
- 2009.09.25
- 최종 저작일
- 20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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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것은 한국사 시간에 레포트를 작성한 것 인데요. 부세정책에 관한 논문을 보고 요약 정리 한 것 입니다.
목차
서론
본론
시대적 배경
지방통치 패러다임의 변화
18세기 부세정책의 전개
19세기 전반 부세정책의 변동
결론
본문내용
서론
“백성은 토지로써 생업을 삼지만 아전은 백성으로써 생업을 삼는다. (아전은) 백성의 껍질을 벗기고 골수를 긁어내는 것을 농사짓는 일로 여기고 머릿수를 모으고 마구 거두어들이는 것으로써 수확하는 일을 삼는다. 이런 습성이 이루어져서 당연한 짓으로 여기게 되었으니, 아전을 단속하지 않고서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이다.” 이는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에서 발췌한 말이다. 이는 그가 향리집단을 어떻게 여겼는지 알게 해준다. 조선사회의 지배층인 사족 출신의 지식인들은 조선 중기 이후 줄기차게 ‘이서망국론’을 제기하였다.
‘이서망국론’이란 ‘이서배’의 부정부패로 나라가 망한다는 뜻이다. 여기서의 ‘이서’란 중앙관청의 서리와 지방관부의 향리를 합하여 지칭하는 말이다. 그 숫자에서 향리가 압도적으로 많았음은 물론이고, 이들 망국론 주창자가 실질적으로 문제 삼은 것도 향리의 부정부패였기에 ‘이서망국론’은 바로 ‘향리망국론’에 다름 아니었다. 이른바 향리 망국론자들의 이런 인식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아전(향리)이 마치 이리떼와 같아서 주민들을 착취하는 것으로 일과를 삼고 밤이 되면 잠도 자지 않고 새로운 수탈을 위한 계획을 짜내기에 골몰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는 대한 제국 사서설에서 한 선교사가 쓴 기록에 나와있는 말이다. 그때문인지 오늘날의 한국인에게 이방.호방. 등 향리라 하면 상전인 사또에게는 비굴한 웃음으로 아부하면서도, 백성들에게는 수탈을 일삼는 이리떼와 같은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과연 조선 후기 향리의 모습은 그러했을까? 그렇다면 조선이 지방을 어떻게 다스렸길래 그리고 부세 정책이 어떠하였길래 향리가 부정부패를 일삼을 수 있었을까? 그 시대적 배경과 부세정책의 변화를 함께 알아보기로 하겠다. 그렇다면 조선은 어떻게 지방을 지배했으며 부세정책은 어떠했을까? 그렇다면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조선후기의 중앙정부가 지방을 지배하기 위해서 안고가야 했던 문제점 과 그들의 모습을 다시 재조명해보도록 하겠다.
참고 자료
장동표, 2000 ⌜부세정책의 변화와 지방지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