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의 국조신화 (단군, 황제, 아마테라스)
- 최초 등록일
- 2009.09.15
- 최종 저작일
- 2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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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아시아의 국조신화 단군, 황제 아마테라스
목차
(1)단군(檀君)
(2)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
(3)황제(黃帝)
본문내용
신화란 그리스의 ‘미토스’(mythos)를 근대 일본인이 번역해 옮긴 단어이다.
국조란 건국 신화의 시조를 말한다. 건국신화의 시조가 국가적인 행사나 기념일에 모든 구성원의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공동체 자체의 신성함을 퇴색시키지 않고 보존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국조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예로부터의 전통이기보다는 근대 민족주의의 산물이었다. 공동의 조상을 가진 민족이라고 할 경우 일체감, 결속, 공동체 의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1)단군(檀君)
①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단군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려시대의《삼국유사(三國遺事)》(1281)와 《제왕운기(帝王韻紀)》(1287)이다. 대체적인 내용은 “환인(桓因)의 아들 환웅(桓雄)이 하늘에서 인간계로 내려와 곰이 사람으로 변신한 웅녀(熊女)와 혼인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곧 단군(檀君)이다. 단군은 조선을 세우고 1,500년 동안 다스린 뒤 산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13세기, 몽골의 침입이란 사상 미증유의 국난을 경험하면서 그 존재는 더욱 뚜렷해졌다. 그것은 역사공동체라는 의식을 강조함으로서 몽골의 침입에 저항할 수 있는 정신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12세기까지만 하더라도 고려의 역사적 위치를 부여할 때 고구려 계승의식과 신라 계승의식이 갈라져 있었다) 단군은 한국사의 근원이며, 삼국이든 고려든 모두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인식을 강조함으로서 역사공동체 의식을 뒷받침하고, 나아가 고려사회 내부의 결속을 호소한 것이다.
단군에서부터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인식은 조선시대로 오면서 더욱 확고해진다. 국가 차원에서 ‘조선시조(朝鮮始祖)’임을 인정하고 단군을 국가제사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조선시대부터이다. 그리고 관찬・사찬을 막론하고, 조선시대의 모든 사서(史書)들은 단군에서부터 한국사를 서술하고 있다.
참고 자료
김학이․천성림․박진우 등 공저,『현대의 기억 속에서 민족을 상상하다』, 세종출판사,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