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시대
- 최초 등록일
- 2009.09.08
- 최종 저작일
- 20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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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나라시대는 수도가 현재 나라 현의 북부에 해당하는 헤이죠쿄(平城京)에 있던 710년부터 784년까지를, 넓은 의미로는 수도가 나가오카쿄(長岡京)에 있던 794년까지를 의미한다. 이 시기 중국에서는 당이 최전성기를 맞이하고 서아시아와도 교류하여 국제색이 풍부한 문화가 꽃피웠다. 일본은 702년부터 8차례에 걸쳐 중국에 견당사(遣唐使)를 파견하여 중국의 문물과 제도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중앙집권 체제에 걸맞는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새 수도를 조영하고, 화폐를 주조하고 국사서를 편찬하는 등의 사업을 차례로 실행했다. 또 676년 통일을 달성한 신라와도 교류를 진전시켰지만 외교 관계를 둘러싸고 긴장된 관계가 지속됐다.
목차
1. 나라시대 개관
2. 나라시대의 특징
1) 율령국가
2) 새 수도 헤이조쿄(平城京)의 조성
3) 일본 국호 처음 사용
4) 덴표 문화-외래 문화의 영향
5) 고사기와 일본서기-역사서 편찬
본문내용
1. 나라시대 개관
나라시대는 수도가 현재 나라 현의 북부에 해당하는 헤이죠쿄(平城京)에 있던 710년부터 784년까지를, 넓은 의미로는 수도가 나가오카쿄(長岡京)에 있던 794년까지를 의미한다. 이 시기 중국에서는 당이 최전성기를 맞이하고 서아시아와도 교류하여 국제색이 풍부한 문화가 꽃피웠다. 일본은 702년부터 8차례에 걸쳐 중국에 견당사(遣唐使) 나라 시대와 헤이안 시대에 일본에서 중국의 문물을 수입하기 위해 당나라에 파견한 사자(使者).
를 파견하여 중국의 문물과 제도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중앙집권 체제에 걸맞는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새 수도를 조영하고, 화폐를 주조하고 국사서를 편찬하는 등의 사업을 차례로 실행했다. 또 676년 통일을 달성한 신라와도 교류를 진전시켰지만 외교 관계를 둘러싸고 긴장된 관계가 지속됐다.
2. 나라시대의 특징
1) 율령국가
이 시대는 앞서 제정되어 시행된 다이호(大寶) 율령 형법에 해당하는 율(律)과 행정법에 해당하는 령(令)으로 구성된 법전으로, 치밀한 관료기구와 문서행정으로 민중을 다스리기 위해 중국에서 완성된 통치 기술의 결정이었다.
을 수정ㆍ정비하는 시기였다. 다이호(大寶)율령은 일본이 중앙 집권적인 체제를 구축하여 국력을 강화하기 위해 당의 율령을 본보기로 하여 제정한 율령이다. 황제의 권력이 절대적이었던 당의 율령에 비해 일본의 율령에서는 유력 호족의 합의에 의해 정치가 행해지고, 천황의 권력은 반드시 절대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사회문화의 발전 단계가 다른 중국의 율령제를 중앙집권제 국가를 빠르게 성립하기 위해 성급히 적용한 일본 국내에서는 마침내 각 방면에서 모순이 나타났다. 예를 들면, 최초의 동전으로 주조된 화동개진은 축전서위령(蓄錢敍位令) 동전을 많이 보유하면 위계를 주는 법.
등으로 유통을 장려했음에도 불구하고 화폐 경제의 기반이 미숙했기 때문에 그 이용
참고 자료
박경희,『연표와 사진으로 보는 일본사』, 도서출판 일빛, 1999
박찬수,『한국에서 쓴 일본 역사 이야기』, 솔, 2003
야마모토 히로후미,『교양인을 위한 일본사』, 청어람미디어,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