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페란토어-에스페란토어와 자멘호프박사의 생애와 업적
- 최초 등록일
- 2009.08.22
- 최종 저작일
- 20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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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에스페란토어-에스페란토어와 자멘호프박사의 생애와 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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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처음에 에스페란토라는 과목을 수강신청 했을 때, 나는 단지 “세계 공용어”라는 정보 밖에 없었다. 그리고 속으로 참 의아했었다. 세계공용어라는 것이 따로 있나? 영어가 공용어 아니었나? 이러한 의문 속에서 나는 에스페란토를 배우게 되었다. 에스페란토는 폴란드의 안과의사 루도비코 라자로 자멘호프 박사가 만들어 낸 인공어이다. 자멘호프 박사는 과연 처음에 어떠한 의도로 그리고 어떤 계기로 이러한 언어를 만들게 되었을까 궁금하였다. 그래서 나는 자멘호프 박사의 일생 중에서 에스페란토어가 성행하게 되기 전까지의 일생이 위의 궁금증을 해소 해줄 수 있었기에 훨씬 와 닿았다. 그러므로, 나는 이 시기에 치중하여 그의 일생을 요약하고 중간중간에 나의 생각과 나의 생활을 돌아보았다.
먼저 자멘호프 박사가 태어났을 당시의 사회적 상황을 알아보자면, 폴란드 북동부는 벌써 반세기 이상을 러시아가 지배하고 있었다. 15세기경에 한 귀족부호가 창설한 비알리스토크마을은 점차 많은 러시아 귀족 가문이 들어왔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이곳은 활기는 넘쳤지만 흙투성이 도로에서 악취가 나고, 아름답지 못한 도시로 변해버려서 주민들은 견딜 수 없는 생활 여건으로 인해 슬픔에 빠졌다. 이곳의 주민 3만 명은 다 같이 비참하게 살면서, 서로 적대시하고, 두려워하고, 불신하였다. 비알리스토크는 종교, 종족, 그리고 언어분쟁의 전쟁터였다. 비알리스토크에서는 공용어인 러시아어를 비롯해, 벨로루시어, 폴란드어, 독일어 및 이디시어의 다섯 가지 언어가 사용되었고, 유대인 사원에서의 히브리어까지 포함하면 여섯 가지 언어가 쓰이고 있었다. 각 종족마다 자기 말을 썼고 다른 종족의 말을 사용하는 것은 거부되었다. 그리하여 매일같이 어딘가에서 욕설, 싸움, 논쟁이 일어났다. 그러므로 두들겨 패는 것만이 그들에게 공통된 언어였다. 그 중에서 유대인이 제일 많은 인구를 차지하였지만, 모든 사람에게는 증오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유대인은 억압과 모욕, 험악한 말만 경험하였다.
참고 자료
- 첫걸음 에스페란토 (이영구) -외대 출판부
- 바벨탑에 도전한 사나이(KEA 편집부) -외대 출판부
- “언어적 차별 없는 국제공용어 역할 확신” -부산일보 2008. 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