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 100년사-정치와 축구, 양자의 진로
- 최초 등록일
- 2009.07.21
- 최종 저작일
- 2009.06
- 5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한국 축구 100년사와 정치적 용도로 이용된 축구,
그리고 그것과 축구의 관계를 밝힌 리포트
목차
-공을 차기 시작하다
-한국축구, 세계에 첫 선을 보이다
-승승장구하는 한국축구
-축구와 정치, 통할까?
본문내용
-공을 차기 시작하다
축구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 중에 하나이다. 한국 축구의 역사는 멀리 삼국시대 때부터 시작된다. 그때에는 현대 축구와 비슷한 `축국(蹴鞠)`이란 놀이 형태의 공차기가 있었다. 김유신과 김춘추(태종 무열왕)가 축국을 하고 놀다가 김유신의 둘째 여동생과 김춘추가 서로 백년가약을 맺은 일도 기록되어 있다. 그때는, 공 대신에 털을 묶어 둥글게 만들거나 가죽 띠를 감아 둥근 모양을 만들어 찼을 것으로 추정된다.
잉글랜드에서 시작된 현대적인 축구가 한국에 시작된 때는 1882년 6월경이라고 전해진다. 이 무렵 영국 군함이 인천항에 입항했는데, 승무원과 군인들이 인천에 상륙하여 볼을 차고 놀았다고 하며, 그들이 돌아갈 때 볼을 주고 간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한편 궁중어전통역관 들은 거의 관립외국어학교 출신으로 외국을 다녀오는 기회가 더러 있었기 때문에 축구라는 경기를 다소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1896년에 우리나라 최초로 `대한 축구 구락부` 라는 팀을 창설하였는데 이것이 우리나라의 근대적인 축구팀의 효시가 되었다. 1920년대 들어서 축구가 본 궤도에 오르기 시작되어 1921년 2월 <동아일보사>와 <매일신보사> 후원으로 `제1기 전조선 축구대회`를 개최하였고 이것을 계기로 전국 체육대회가 열리게 되었다. 22년 7월 중국 상하이 거주 동포 축구단이 내한하여 처음으로 정식 경기 규칙을 적용시켜 경기를 함으로써 현대 축구로 발전하게 되었다.
광복 후 우리나라는 47년 6월에 국제축구연맹에 가입하고, 48년 런던에서 개최되었던 제14회 올림픽 대회에 참가하여 처음으로 세계무대에 진출하였다. 1954년에는 월드컵 본선에 최초로 진출하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한국축구, 세계에 첫 선을 보이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오직 생존에만 여념이 없던 암울한 시기에 축구의 대제전인 월드컵이 스위스에서 열렸다. 당시 한국은 먹는 것, 입는 것에 매달려 다른 데 눈을 돌릴 여유가 없었는데도 축구는 인기를 끌었다. 달리 구경거리나 갈 곳, 놀이가 없던 터라 공 하나로 수십 명이 즐길 수 있는 축구는 누구나 하는 놀이였고 관심 갖는 경기였다. 학교 운동장이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