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현대사 요약
- 최초 등록일
- 2009.07.07
- 최종 저작일
- 20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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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사를 요약했습니다.
제 4장을 요약 했습니다.
목차
제 4장 열정, 1945~48년
한국의 분단
수백명의 보수주의자들 : 초기의 협력
남한의 좌익과 우익
대한민국의 건국
제주반란과 여수반란
북한
경찰과 정보기관
결론
본문내용
제 4장 열정, 1945~48년
1943~53년 사이 민족분단과 남북 대립이 형성되었고, 한국의 현대정치도 이 10년간의 사건들을 파악해야 이해할수 있다. 이곳에서 미국은 지배적인 역할을 했다. 1945~48년 사이 미국은 한국을 점령해서 완전한 군사정부를 운영했다. 일본 패망후 몇주 내에 표면상의 한국 정부가 실제로 있었다. 건국준비위원회(8월중순)로 시작되어 ‘인민위원회’(9월)로 정착했다. 그러나 정부의 명칭 역시 ‘조선인민공화국’(1945년 9월 6일)으로 바뀌었는데 미국은 이 정부를 기피했다. 소련은 미국인들이 남에 들어오도록 ‘허용’하고 인민위원회 조직을 지원했다. 미국은 ‘한국민주당’(1945년 9월)을 결성한 망명민족주의자 집단과 일부 보수 정치인들을 선호했다. 1948년 이전에 한국은 양쪽으로 갈렸고 워싱턴과 모스크바가 더욱 강화함으로써 한국은 사실상 분단되었다.
분단에는 어떠한 역사적 정당성과 내부적 구실도 없었는데, 침략자인 일본대신 한국과 중국 그리고 베트남이 분단되었다. 한국의 분단은 냉전에서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분단들이 분단의 이유였다. 그런 분단들은 냉전이 개시되기 이전에 일찍 한국에 찾아왔고, 냉전이 끝난 지금도 계속 남아있다.
이러한 민족분단은 역사문헌에서 소련의 방해와 한국의 정치적 미숙 탓으로 돌리고 있으나 사실은 그들이 한짓이 아니었다. 38도선에 주된 책임은 미국에 있다.
한국의 분단
한국인들이 1945년 8월 15일 한국의 해방을 알기 며칠 전에, 3부조정위원회(SWNCC)의 존머클로이(John.j.mecloy)는 딘 러스크(Dean.R)와 찰스본스틸(Charles.H.B)에게 한국의 분할할 지점을 찾으라고 지시했다. 이때는 이미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붉은군대(소련)가 참전했으며, 미국정책입안자들이 전선의 전지역에서 일본 항복을 끌어내기 위해 몰려오고 있던 8월 10일과 11일 사이의 자정무렵이었다. 이때 정한 38도선은 수도를 미국의 영역 안에 둘수 있기 때문이었다. 38도선은 미국이 현실적으로 타협할수 있는 지점보다 훨씬 더 북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련이 반대 하지 않아 러스크는 “다소 놀랐다.”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은 일본이 항복하자 일반 명령 1호를 발표했는데 이중에는 38도선에 대한 결정이 포함되어 이를 공표한 셈이었다. 러시아는 이 영역분할을 받아들이고 일본 홋가이도오 북쪽지역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참고 자료
브루스 커밍스/ 한국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