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치산
- 최초 등록일
- 2009.06.24
- 최종 저작일
- 2009.06
- 2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목차
없음
본문내용
빨치산은 파르티잔(Partisan)을 우리나라에서 빨치산이라 부르면서 고착된 말이다,파르티잔(Partisan)은 프랑스어의 당원이라는 파르티(parti)에서 비롯된 말로 현재는 유격대원, 게릴라대원이라는 뜻이다.
빨치산은 일제시기부터 있었다. 국내에서는 일제 말기 징병·징용을 피해서 산으로 들어갔던 젊은이들은 일제에 대항하기 위해 조직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 조직은 적은 규모이며 조직적인 것도 아니었다. 국외에서는 보다 더 조직적이며 많은 규모의 항일빨치산이 만들어졌다. 조선의용군·동북항일연군으로 불려진 세력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일제에 치열하게 저항하였고, 때로는 국내진공작전까지 시도하였다. 일제는 이들을 `비적`으로 부르며 엄청난 액수의 현상금을 내걸고 정규군을 동원한 대규모토벌작전을 진행하였다.
해방 뒤 남한의 빨치산은 1946년부터 시작되었다. 그해 10월 친일경찰의 악행과 각종 사회문제 때문에 대구에서 시작된 10월 인민항쟁은 전국을 휩쓸었다. 항쟁을 진압한 뒤 미군과 경찰은 항쟁을 주도했던 세력들을 체포·구속하였다. 이러한 탄압에 맞서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조직이 `야산대`라는 이름으로 조직되었다. 그러나 이 조직은 초보적인 수준이었을 뿐 본격적인 무장항쟁을 전개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본격적인 빨치산의 시작은 남한만의 단독선거·단독정부수립에 맞선 제주도의 4·3항쟁에서부터였다.
제주 4·3항쟁은 5월 10일 치러진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무산시켰고, 이에 대해 미군정은 초토화전술을 대표되는 가혹한 탄압으로 일관하였다. 내륙의 빨치산은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된 지 2달여 만에 발생한 여순사건에서 본격화 되었다. 10월 19일 제주도 파병과 군내 좌익제거인 숙군에 반대하여 일어난 여수 주둔 제14연대 병사들의 봉기는 신생 대한민국 체제에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