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거주지 동부이촌동 고찰
- 최초 등록일
- 2009.06.21
- 최종 저작일
- 20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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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본인 거주지 동부이촌동 고찰 내용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일본인 거주지의 변천 모습
1) 개화기(1876~1910): 용산 일대
2) 일제시대(1910~1945)
① 일제초기(1910~1919)
② 일제중기(1920~1935)
③ 일제 말기(1936~1945)
3) 해방 이후
4) 1970년대 이후
2. 동부이촌동: 답사로 본 서울의 리틀 도쿄
3. 외국인 거주지 사례 비교: 서래마을
Ⅲ 결론
참고자료
본문내용
Ⅰ. 서론
21세기 우리사회의 가장 큰 화두는 ‘세계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세계화’는 정보기술의 발달과 함께 우리 사회를 더욱 복잡하고 빠른 변화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다. 이는 개개인의 생활패턴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세계 도시로 거듭나고 있는 서울도 예외가 아니다. 서울 시내 곳곳에서 많은 외국인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거리에서 영어나 일본어 혹은 중국어로 대화하고 있는 한국인들도 쉽게 볼 수 있다. 캠퍼스 또한 세계화 물결에 발맞추어 우리가 생활하는 강원대 교정 내에서도 교환학생을 비롯한 많은 외국인 학생을 만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서울 시내 곳곳에서도 외국인들의 집단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연희동에는 화교집단과 함께 화교 학교를 찾을 수 있고 외국인 학교 또한 자리하고 있어 많은 서양인들을 만나볼 수 있으며 영아사체 유기 사건으로 우리 사회를 한동안 시끄럽게 만들었던 서래마을 역시 프랑스인 집단 거주지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19세기 후반부터 역사상 우리나라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인의 경우는 어떠할까? 일본인들은 현재 서울의 용산구 동부이촌동에 주로 거주하고 있다. 그 결과 동부이촌동은 현재 ‘리틀 도쿄’로 우리에게 알려져, 동부이촌동이라는 공간에 또 하나의 장소성을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동부이촌동 지역의 경관(landscape)과 더불어 주민들의 생활상에도 많은 변화를 주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Ⅱ. 본론
1. 일본인 거주지의 변천 모습
1) 개화기(1876~1910): 용산 일대
1876년 강화도 조약을 계기로 불평등하게 원하지 않는 개항을 계기로 조선은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각 항만에는 상인 이외에도 외국인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는데, 조선의 쇄국 정책의 종결을 이끌어 낸 일본은 당시 조선에 들어온 외국인들의 수 중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면서 점차 한반도 내에서의 세력을 확장시켜갔다. 이러한 가운데 일본인들은 용산을 중심으로 정착하기 시작하였다
참고 자료
「서울의 인구 및 거주변화」1990, 양옥희
「대한주택공사 20년사」1979, 대한주택공사
「외국인 거주지 분석을 통한 서울시 국제적 부분의 형성」최재헌 & 강민조 한국도시지리학회지 제6권 1호 pp.17-30, 2003
-용산구청 홈페이지 www.yongsan.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