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 문일평에 대하여
- 최초 등록일
- 2009.06.20
- 최종 저작일
- 20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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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호암 문일평에 대하여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문일평의 생애와 활동
2. 문일평의 역사관
3. 역사학 체계
Ⅲ. 결론 ( 맺음말 )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호암(湖巖) 문일평(文一平) 선생은 교육자이며 ‧ 사학가 ‧ 언론인이다. 정확히 하자면 “언론이기보다는 문사(文士)” 라는 평가가 많았다.
1920년대부터 ‘역사 연구로 이름’(『조선일보』1926년 8월 12일 ) 이 알려진 유명한 사학자였다. 타계할 때 까지 「조선일보」지면에 역사칼럼과 사설을 정력적으로 집필하였다. 1939년 작고할 때 까지 34년 동안에 길고 짧은 글 150여 편을 신문 ‧ 잡지에 게재 했다. 이것은 200자 원고지로 따지면 1만 장에 육박할 듯 하다. 이 가운데 호암의 학문가 사고가 원숙해지고 일제의 압박이 심해진 1930년대에 쓴 글에서 ‘조선심(朝鮮心)’과 ‘민중’의 개념을 들 수 있다.
그는 글과 언론을 통한 문화 활동으로 우리 민족의 항일투쟁을 하였다. 이광수 ‧ 홍명희 ‧ 안재홍 ‧ 정인보 ‧ 한용운 ‧ 이병도 등 언론계 ‧ 학계 를 비롯한 당대 최고 지식인들과 시국에 대해 논의하기도 하였다.
지난 1995년 독립운동가로서의 공로가 인정되어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고, 2003년에는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어 독립기념관에 그의 어록비가 세워졌다.
본론에서는 호암의 생애와 활동, 역사연구 , 역사서술 등 을 살펴 보기로 하겠다.
Ⅱ. 본론
1. 문일평의 생애와 활동
호암 문일평은 1888년 음력 5월 15일 평안북도 의주군 의주면 서부동 80번지에서 출생했다. 본관은 남평이다. 1905년 도일하여 청산학원 중학부와 정칙학교를 거쳐 20세가 되던 해 (1907) 일본 메이지 학원 보통과 3학년에 편입하여 3년간 학업을 마치고 귀국(1908) 했다. 귀국 년도에 평양 대성학교, 의주 양실학교, 서울 경신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최남선의 광문회(光文會)에 관여 했으며, 상동청년회가 부설한 강습소에서 지리를 가르쳤다
참고 자료
「 한국과 한국인 Ⅱ」 , 일신서적공사 - 문일평 1986
「 문일평 1934년 」, 살림출판사 - 문일평 지음 이한수 옮김 2008
「 호암사논호암선집」 , 현대실학사 - 문일평 지음 정해염 옮김 1996
「 소년 한국 역사」 , 교학사 - 문일평 1992
사진 출처 - 네이버 www.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