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에 대한 조사
- 최초 등록일
- 2009.06.12
- 최종 저작일
- 20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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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에 대한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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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공자는 군자에 의한 통치를 이상적인 정치로 보았는데, 이것은 플라톤의 철인통치론(哲人統治論)과 대체로 흡사하다. 두 철학자 모두 정치를 교육 또는 교화의 차원에서 파악함으로써 정치와 교육이 서로 분리 될 수 없는 것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철인통치자가 지식을 숭상하는 철학자였음에 반하여, 공자의 군자는 덕을 숭사하는 인자(仁者)였다. 따라서 군자는 덕으로 사람을 교화시키고, 철인통치자는 지식으로 나라를 다스린다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공자 정치사상의 출발점은 종주(從周)와 정명(正名)사상이다. 공자는 춘추시대의 혼란이 예(禮)질서에 입각했던 주나라의 정치질서가 무너진 데서 비롯되었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예(禮)를 중시하는 주나라의 정치제도를 다시 따름으로써 이상적인 정치사회질서를 회복하자고 주장했는데, 이것이 바로 종주(從周)사상이다. 정명(正名)이란 종주사상을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명분에 상응하여 실질을 바로 갖추는 것을 의미한다. " 군주는 군주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다운 것(君君臣臣父父子子)"이 정명하다. 군주와 신하, 부모와 자식이 제각기 본분에 맞게 행동하고, 또 각각 사회 속에서 자기에게 부과된 직분을 다한다면, 당연히 사회의 질서가 수립되고 만인이 편안하게 살게 되리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가사상에서 정명(正名)이야말로 정치를 바로잡는 첫 출발이자 필수적인 조건이다.
그런데 정명(正名)은 반드시 구체적인 표준모델을 요구한다. `아버지답게`라는 말은 귀감이 되는 `아버지상`의 존재를 요구하게 마련이고 마찬가지로 정치, 사회적 차원의 정명(正名) 역시 모델을 요구한다. 공자가 정치제도 차원의 정명모델로 꼽은 것은 바로 예(禮), 그 중에서도 전성기 때의 주나라 예(주례, 周禮)였다. 여기서 말하는 예는 관혼상제(冠婚喪祭) 등의 의식과 지엽적인 예절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고, 사회 전체의 제도와 문물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이처럼 공자는 정명을 통해 예에 의해 다스려지던 주나라 때의 정치질서를 회복함으로써 정치적 이상사회를 수립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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