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 운동장의 역사
- 최초 등록일
- 2009.06.11
- 최종 저작일
- 20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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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대문 운동장의 역사와 동대문 운동장의 미래
목차
• 동대문 운동장의 역사적 가치
• 동대문 운동장의 역사
①조선시대
②경성운동장 시대(1926-1945)
③서울운동장 시대(1945-1984)
④동대문운동장 시대(1984-2003)
⑤풍물시장으로 변모 및 기능상실(2003-2007)
• 동대문 운동장의 철거
• 동대문 운동장의 미래
본문내용
서울운동장이라고도 한다. 면적 9만 5764㎡이고 1925년 5월에 착공하여 1926년 3월에 준공한 종합경기장이다. 운동장 위치는 조선시대 하도감 자리로, 임오군란 때에는 청나라 제독 오장경이 진을 쳤던 자리이기도 하다. 한국 스포츠의 발전과 한국 경기사와 함께 하였는데, 시설이나 규모의 빈약함은 8·15광복 뒤에도 한동안 벗어나지 못하였다.
1962년의 보수공사로 육상경기장을 비롯하여 야구장·수영장·배구장·테니스장 등이 국제규모의 운동경기를 치를 수 있는 시설을 갖췄다. 하지만 1966년 대대적인 확장공사가 이루어졌는데, 이때 야구장에 야간 조명시설이 마련되었다. 1968년 보수공사로 메인스타디움인 육상경기장이 면모를 갖추었다.
동대문운동장은 우리나라 근대 체육의 시발점이며 산실로 충분하다.
또한 이곳은 조선 건국과 아울러 서울 도성이 있던 곳(현 축구장을 대각선으로 관통)이며, 그 안에 도성을 경비하던 훈련도감이 있었던 곳이며, 우리 정치사에서 중요한 획을 긋는 사건들도 많았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체육이 엘리트 체육이라는 비판이 있지만 세계 10위권의 체육 강국으로 발전한 것도 사실이며, 엘리트 체육이라는 이면에는 서울 시민이 쉽게 접근해서 즐기고 짜릿한 감동을 받은 곳도 동대문운동장이다. 즉 동대문운동장은 서민체육과 엘리트 체육이 공존한 보기 드문 공간 중에 하나이다.
혹자는 친일청산, 낡은 시설에 불과하다고 지적할 수 도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