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자본주의의 역사
- 최초 등록일
- 2009.05.24
- 최종 저작일
- 20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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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사학과 학생의 강만길의 한국자본주의의 역사 일부 서평입니다.
목차
1. 개항과 유통구조의 변용.
1) 불평등 조약체계의 성립과 무역구조.
2) 유통구조의 변화와 상업의 발전.
2. 경제정책의 한계와 식산흥업의 실패.
1) 정부의 경제정책과 그 한계.
2) 생산구조의 변화.
3. 농민층 분해와 임금노동자층의 생성.
1) 지주제 강화와 농민층 분해.
2) 임금노동자의 생성과 존재.
본문내용
1. 개항과 유통구조의 변용.
1) 불평등 조약체계의 성립과 무역구조.
서구열강은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급속한 성장으로 인하여 해외 수출과 원료를 공급받을 시장이 절실했다. 따라서 동아시아로 눈을 돌렸고, 아편전쟁으로 중국을 굴복시킨 데 이어 조선에도 통상요구와 무력침략을 가해왔다. 이에 대원군은 쇄국정책을 실시했으나 반사적으로 병인양요(丙寅洋擾,1866)와 신미양요(辛未洋擾,1871)를 유발시켰다. 대원군의 쇄국정책은 민비의 세력과 유생세력으로부터의 반발로 인해 무너졌으며, 결국 1876년 2월 「조일수호조규」의 체결로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되었다. 1882년에는「조미수호조약」과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1883년 영국과 「조일통상장정」을 맺는 등 정치적․군사적 압력에 의한 불평등조약이 잇따라 체결되었다. 이로써 청․일을 비롯한 서구열강은 조선에 대한 경제적 침투를 점차 강화해갔다.
조선의 무역구조는 곡물 수출과 면포 수입으로 대표된다. 1890년대 조선의 대일무역 수지는 곡물 수출이 급격히 증대하면서 흑자를 보이기도 했으나 청국과의 교역에서는 적자를 면치 못했다. 이는 청국에서의 면포 수입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면포 이외에 금 무역에서도 청이 일본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청일전쟁 이후 조선무역은 점차 일본에 집중되어갔고, 총수출액에서 곡물 수출량이 80% 이상을 차지했다. 곡물의 대량수출은 조선의 농업경영을 곡물제배로 협소화시키는 한편, 지주제가 강화되고 농민층 분해를 촉진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또한 일본 목면과 면사 수입이 급증하면서 값싼 일본산 목면이 소비시장을 잠식함에 따라 조선의 면포생산은 해체되어갔다. 한편 일본이 조선산 금을 대량 매입하여 조선은 금본위제를 위한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2) 유통구조의 변화와 상업의 발전.
조선후기 이래 형성된 전통적 상품유통권은 동해안 유통권과 서해안 유통권으로 양분되어 있었으나 개항으로 인해 부산항이 새로운 유통권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