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0세기 초 개혁주의 신학에 있어서 중요한 인물들인 H.Bavinck와 K.Barth가 자신의 신학의 기초를 세울 때, 17세기 개혁신학으로 돌아가 시작하였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17세기 개혁신학에 있어서 어떻게 돌아가고 누구에게 돌아가느냐가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 H.Bavinck는 17세기 개혁신학의 오랜 교과서와 같은 『순수신학통론』(Synopsis Purioris Theologiae)를 재편집하였고 K.Barth가 궤팅겐 대학에서 처음 강의할 때 17세기 개혁신학에 대해서 편집한 H.Heppe의 책(Die Dogmatik der evangelisch-reformierten Kirche)으로 돌아가서 강의하였다. 그 당시 Ernst Bizer가 재편집할 때 K.Barth가 그 머리말을 썼다. 문제는 그의 신학은 로마서주석을 통하여 잘 알려져 그런 명성 때문에 궤팅겐 대학에서 처음 교의학에 대해서 강의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그가 17세기 개혁신학을 공부하기 전에 이미 그의 신학이 있었다는 말이다. 그 당시 17세기 개혁신학을 공부하여 교의학을 강의할려고 했을 때, 비록 그가 성경이 그 교의학(eine evangelische Dogmatik)에 있어서 성경이 그의 교사가 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을지라도, 그가 자기의 신학으로 17세기 신학을 평가하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정당하다. 이런 칼 바르트의 시작은 세 가지 점에서 의미가 있다. 첫째로 종교개혁자들을 통하여 바로 성경으로 가는 프로테스탄트 교의학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목적에 이르는 도상에 정통주의라는 한 정거장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였다는 점이다. 둘째로 정통주의로 돌아가는 것(ein Zur ckgehen auf die Orthodoxie)은 그에게 그 안에 머물러 있고 그것과 동일하게 행하고자(um bei ihr stehen zu bleiben und es ihr gleich zu tun!)는 뜻이 있었다는 점이다.목차
머리말I. 한국장로교회와 정통개혁신학
II. 역사적 정통개혁신학의 바른노선
III. 17세기 개혁신학의 역사적 배경
IV. 17세기 개혁신학의 개관(槪觀)
V. 도르트회의와 예정론 논쟁
VI. 레이든 대학 신학자들의 신학
VII.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그 신학
1. 웨스트민스터 총회와 그 배경
2. 총대들의 신학적 입장들과 그 고백서의 성격
3. 에라투스주의와의 논쟁
4. 독립교회주의와의 논쟁
VIII. 17세기 언약신학과 정통개혁신학의 몰락
1. 코케이우스 이전의 언약신학
2. 코케이우스 언약신학과 그 후기역사
맺는 말
본문내용
0세기 초 개혁주의 신학에 있어서 중요한 인물들인 H.Bavinck와 K.Barth가 자신의 신학의 기초를 세울 때, 17세기 개혁신학으로 돌아가 시작하였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17세기 개혁신학에 있어서 어떻게 돌아가고 누구에게 돌아가느냐가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 H.Bavinck는 17세기 개혁신학의 오랜 교과서와 같은 『순수신학통론』(Synopsis Purioris Theologiae)를 재편집하였고 K.Barth가 궤팅겐 대학에서 처음 강의할 때 17세기 개혁신학에 대해서 편집한 H.Heppe의 책(Die Dogmatik der evangelisch-reformierten Kirche)으로 돌아가서 강의하였다. 그 당시 Ernst Bizer가 재편집할 때 K.Barth가 그 머리말을 썼다. 문제는 그의 신학은 로마서주석을 통하여 잘 알려져 그런 명성 때문에 궤팅겐 대학에서 처음 교의학에 대해서 강의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그가 17세기 개혁신학을 공부하기 전에 이미 그의 신학이 있었다는 말이다. 그 당시 17세기 개혁신학을 공부하여 교의학을 강의할려고 했을 때, 비록 그가 성경이 그 교의학(eine evangelische Dogmatik)에 있어서 성경이 그의 교사가 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을지라도, 그가 자기의 신학으로 17세기 신학을 평가하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정당하다. 이런 칼 바르트의 시작은 세 가지 점에서 의미가 있다. 첫째로 종교개혁자들을 통하여 바로 성경으로 가는 프로테스탄트 교의학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목적에 이르는 도상에 정통주의라는 한 정거장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였다는 점이다. 둘째로 정통주의로 돌아가는 것(ein Zur ckgehen auf die Orthodoxie)은 그에게 그 안에 머물러 있고 그것과 동일하게 행하고자(um bei ihr stehen zu bleiben und es ihr gleich zu tun!)는 뜻이 있었다는 점이다. 셋째로 H.Heppe의 정통주의 참고자료에 대해서 비판적이었다는 점이다. 즉 Heppe의 역사적 관점은 칼빈을 개혁주의의 아버지로 돌린 것이 아니라 후기 멜랑히톤을 개혁주의의 아버지로 돌린 셈이 되었다는 점을 비판하였다. 더구나 Heppe에게 데카르트주의와 결합된 코케이우스와 그의 추종자들의 언약신학의 돌입이 깊은 문제로 여기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그는 19세기 정신에 종속함을 표한 것이라고 논평하였다. 그러나 그런 비판은 놀랍게 H.Bavinck의 유산이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교의학자들 사이에 이루어 놓은 신학적인 차이는 후진들에게 많은 것을 깨닫도록 한다. 즉 종교개혁자들에게 돌아가든, 17세기의 정통주의로 돌아가든, 돌아가는 자의 신학적 근본이 문제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17세기로 돌아가는 것은 17세기로 그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여기에서 17세기로 돌아가도 많은 길들이 있다는 점이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에 대한 어떤 이해를 통하여 돌아가느냐가 가장 문제이고 17세기의 어떤 신학, 어떤 인물로 돌아 가느냐가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다. 정통주의로 돌아가는 것은 지금 돌아가고자 하는 자에게 가장 좋은 개혁주의<font color=aaaaff>..</font>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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