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화사
- 최초 등록일
- 2001.10.27
- 최종 저작일
- 20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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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지금 까지 기존의 연구성과에 의하면 16세기에 있어서 발생하는 이런 변화는 대체로 부정적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것은 위의 사실을 16세기의 사화 당재 및 왜란과 관련되어 그 원인으로써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16세기 이러한 변화는 경제변동현산의 새로운 발전을 뜻하는 변화임에 틀림 없다. 이는 15세기 농업경제력의 신장을 배경으로 16세기에 발전적으로 확대되는 단계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16세기의 이러한 변동은 초기성으로 인하여 취약점이 적지않았다. 그 대표적 예가 군역의 포납화와 공납의 방납화를 들 수 있다.
이에 더하여 연산군읜 호사스런 생활은 공물의 수요를 격증시켰으며, 이는 결국 왕실 재정을 고갈 시키는 요인이 되었던 것이다. 부족한 공물을 충당하기 위해 수시로 가정,인납이 행하여 졌다.공물 증가는 농민층의 부담을 가중시켰으며 과중한 부담에 농민층은 토지를 이탈하였다. 토지로부터 유리된 농민은 소작인으로 전락하거나 유민화하였으며 또한 일부는 도시로 나아가 상업에 종사하였더, 이러한 현상이 연산군때에 더욱더 심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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