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역사의식
- 최초 등록일
- 2000.11.14
- 최종 저작일
- 20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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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민족주의사학의 역사학으로써의 규명
2. 1910-20년대 : 민족주의사관의 형성
1) 근대민족주의의 확립
2) 민족주의사관의 형성
a) 박은식
b) 신채호
c) 의의
3. 1930-40년대 : 민족주의사관의 발전
1) 정인보
2) 안재홍
3) 문일평
4) 의의
4. 해방후 - 1950년대 : 민족주의사학
1) 역사학회
2) 의의와 한계
5. 1960-70년대 민족주의사관의 계승
1) 시대적 배경
2) 사학계 동향
3) 평가
6. 요약정리
본문내용
요약정리
민족주의 사관은 일제의 한반도지배를 정당화려는 일본의 식민사관에 대한 반발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우리 민족의 정신척 측면을 고양시켜 독립을 달성하려는 민족독립운동의 일환이었다. 박은식에 의해서 애국계몽주의 역사의식으로부터 근대역사학으로의 전환을 이루어 기틀을 다진 민족주의 역사의식은 신채호에 의해서 그 모습을 드러내어 확립되었다. 이 시기에는 역사의 주체세력을 민중으로 인식하기 시작하였고, 과학적 합리주의에 입각한 역사서술이 이루어졌다.
이후 민족주의 사관은 비타협적 민족주의세력에 의해서 계승되어나갔다. 이 시기에는 민족주의 역사학의 반식민사론의 성격을 더욱 심화시켜, 식민사관을 극복하여 주체성과 독립정신을 고취하려는 성향을 보였다.
해방 직후 잠시 사상의 해방공간이 이루어지면서 각 사상계의 연구활동이 활발히 벌어지는 듯 싶었으나 곧 이어 한국전쟁과 남북분단으로 인해 남한은 철저히 반공논리로 무장하여 그 외의 사상들은 철저한 체제를 받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족주의 사학과 사회주의 사학 계열의 역사학자들은 대부분 월북, 납북되었고 문헌고증사학 계열의 역사학자들만 남았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속에서 민족주의 사관은 신민족주의로 면면히 계승되어 내려져오게 되며, 이를 담당한 것은 당시 소장파들에 의한 '역사학회'였다. 그러나 이는 실증사학의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생략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