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답사보고서
- 최초 등록일
- 2000.10.05
- 최종 저작일
- 20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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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태조4년(1395) 9월에 새 궁궐 경복궁이 완성된 후, 얼마 되지 않아 태조 7년 8월에 '왕자의 난'이 일어나 세자 방석이 죽자 태조는 왕위를 정종(定宗)에게 양위한다. 그러나 정종은 개성으로 돌아가고 다음 해에 제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정종은 방원에게 양위하니 그가 바로 조선 3대 임금인 태종이다.
태종이 즉위하여 한양으로 재천도하게 되는데 이 무렵 이궁(離宮 ; 태자궁, 세자궁의 총칭)으로 지은 것이 창덕궁이다. 창덕궁 조성공사는 태종 4년(1404) 10월에 시작, 다음 해 10월에 일단 끝난 단기간의 공사이므로 태종은 재위중 계속하여 궁안의 문이나 누각들을 세웠으니 돈화문(敦化門)이 완성되는 태종 12년에 가서야 거의 궁궐 면모가 갖추어지게 된다.
창덕궁은 크게 인정전(仁政殿) 일곽(一廓)인 외전과 대조전(大造殿) 일곽인 내전으로 나누어 진다. 정문인 돈화문에는 큰 종을 달아 새벽과 밤늦게 쳐서 시간을 알리고 치안질서를 유지하는데 이바지했는데, 특히 이 종은 전국 각도의 무쇠 1만5천근을 모아 만들었으며 변계량(卞季良)에게 명하여 종명을 지어 새기게 하였다.
창건후 임진왜란이 일어날 때까지 약180여년간 큰 재난 없이 존속되었다. 연산군 대에 이르러 무리한 공사를 벌였으나 모두 이루어진 것은 아니고 이 왕명에 반대하는 신하는 모두 처형하는 폭정을 하였는데 이 때 많은 전각들이 개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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